한 콩깍지에 든 콩알들
한 콩깍지에 든 콩알들
  • 문틈/시인
  • 승인 2012.05.30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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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란 한 콩깍지에 든 콩알들이다. 삼국지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다. 불을 때는 한 솥에서 어느 콩알이든 똑같이 뜨겁다. 피를 나눈 공동운명체라는 뜻인 듯싶다. 죽을 때까지 이 관계는 변할 수 없다. 한데 아무리 한 동기간이라고 해도 못 살고 잘 살고로 나누어진다. 참 슬픈 일이다.

얼마 전 굴지의 어떤 재벌 형제가 재산 분할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보았다. 또다른 재벌의 형제 중 한 사람은 부채에 시달려 자살했다. 이것이 세상입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아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맏이라고 해도 재산이 없으면 형제간에 서먹한 관계가 되기 쉽다. 존엄과 권위를 잃고 뒷전에 서기 마련이다. 잘 사는 사람은 막내라 해도 저절로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 다른 형제들을 압도한다. 형제끼리는 똑같은 정도로 살아야 한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개인의 노력 정도, 운명, 능력에 따라서 재산 소유 정도가 달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먹고 살기 어려울 정도로 격차가 벌어진다면 이는 안될 일이다. 더 잘 사는 형제들끼리 추렴해서 가난한 형제를 도와야 마땅하다. 어느 형제가 궁핍해서 자식들 교육도 제대로 못시키고, 아파도 병원에 못 간다면 그것이 무슨 한 콩깍지에 든 콩알들이랴 싶다.

내가 재벌이 아니라서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재산을 가지고 형제들끼리 다투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서가 말하듯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먼저 하라 했거늘 하늘이 내려준 형제의 의를 모른 체한단 말인가. 이런 내 생각이 세상을 너무 모르고 하는 철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철없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도대체 돈이 무엇이관대 형제를 고소하고 빚에 떠밀려 자살하는 형제를 먼저 돌보지 않는단 말인가. 제비는 열심히 먹이를 물어다주어 새끼들을 기른 후 마지막으로 비행연습을 시킨 후 자식들과 헤어진다. 그리고는 죽을 때까지 다시는 자식들을 만나는 일이 없다고 한다. 각자 도생하라는 것이다. 비정한 자연의 섭리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인간은 제비 같은 미물이 아니다. 같은 부모의 슬하에서 나왔는데 형제간의 의를 무시하고 ‘내가 제일 잘 나가’ 식으로 등 돌리며 사는 것을 어찌 형제라고 할 수 있을까. 일찍이 역사철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자기가 세상을 떠날 때 만일 저 세상으로 가지고 갈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단연코 한국의 대가족제도라고 술회한 바 있다.

그만큼 우리나라 대가족제도의 인륜이 보여주는 가족애를 높이 칭송했다. 그랬는데 불과 한 세대만에 우리의 대가족제도는 해체되고 세기의 석학이 칭송했던 가족애도 시들해졌다. 이를 놓고 우리의 형편이 어찌 한낱 미물인 제비보다 낫다고 할 수 있겠는가.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정치, 사회, 교육, 문화 할것없이 최고의 자리에는 돈이 앉아 있다. 돈이 최상의 가치가 되어 있는 것이다. 매우 슬픈 사실이다. 돈 앞에서 부모도 형제도 이웃도 나아가 사회공동체도 뒷줄로 밀려난다. 이런 세상에서 아무리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산들 무슨 삶의 보람이 있을 것인가. 진정으로 형제간에 우애하고 사는 사람이라면 나아가 이웃과 사회까지도 형제애로 감싸고 살게 되지 않을까.

우리사회가 형제애를 복원하는 데서 새로 구성되지 않으면 나중에는 사회공동체마저 해체되는 불행한 세상이 오지 않을까 걱정된다. 우리는 한 콩깍지에 든 형제들이다. 삼국지를 다시 읽어서라도 잊어서는 안될 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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