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오신 날 풍뎅이 한 마리
부처님 오신 날 풍뎅이 한 마리
  • 문틈/시인
  • 승인 2012.05.23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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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때 산 속 작은 절에서 공부하며 지낼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창밖을 내다보고 있노라니 단풍나무에 거미줄이 쳐져 있고, 그 거미줄에 풍뎅이 한 마리가 걸려 날개를 퍼덕이며 빠져나가려 용을 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거미줄 주위로 풍뎅이 너댓 마리가 붕 붕 날고 있었다. 아마도 거미줄에 걸린 풍뎅이를 구조해보려는 것인가 보았다. 풍뎅이 곁을 날아다니던 다른 풍뎅이들이 애를 쓰다 그만 포기하고는 절 지붕 너머로 날아 가버렸다.

그러자 나뭇잎 뒤에 숨어 있던 거미란 놈이 재빨리 풍뎅이에게로 기어가 길고 무섭게 생긴 발가락들을 움직여 거미줄을 뽑아내더니 아주 빠른 동작으로 풍뎅이를 친친 감기 시작했다. 거미는 풍뎅이를 꼼짝 못하게 포박해놓고는 다시 나뭇잎 뒤로 돌아가 숨었다.
나는 그 순간 얼른 풍뎅이를 구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문득 거미줄에 걸려든 풍뎅이가 거미에게는 양식일 터인데 내가 풍뎅이를 구해주는 것이 옳은 일인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구해주지 않으면 풍뎅이는 생명을 잃고 말 것이었다.

나는 이도 저도 못하고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잠시 망설이고 있었다. 이런 장면에서 대웅전의 부처님은 어찌하실까, 못 본 척하고 마실까. 나는 감히 부처님의 마음을 짐작해보려고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내가 어느 쪽 편을 들까 잠시 답을 찾고 있는 참에 절 지붕 너머로부터 검은 모래 바람 같은 것이, 나중에 보니 풍뎅이떼가 새까맣게 몰려오고 있었다. 스무 마리도 넘는 풍뎅이 군단이 몰려와서 거미줄에 걸린 풍뎅이를 구하려고 필사적으로 거미줄에 달려들었다.

아까 날아갔던 풍뎅이들이 구조를 요청해 몰려온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그 중 어떤 풍뎅이는 거미줄에 걸릴 뻔하다가 아슬아슬하게 빠져 나오고, 그러는 사이에 거미집도 몇 가닥이 풀어졌다. 하지만 풍뎅이 군단도 결국 거미줄에 감긴 풍뎅이를 구해주지 못한 채 돌아가고 말았다.
나는 답은 찾지 못했지만 망가진 거미집을 보면서 풍뎅이를 구해주어야 한다는 내 본능에 따르기로 했다. 풍뎅이들의 구조활동을 보고 나서 더 이상 거미의 입장을 고려하고 말고 할 마음이 아니었던 것이다.

내가 구해준 풍뎅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었다. 다음날 아침 깨어나 보니 책상 위에 놓아둔 풍뎅이가 보이지 않았다. 찾아보니 풍뎅이란 놈이 살아서 방바닥을 이리저리 기어 다니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레 풍뎅이를 집어 창문을 열고 손바닥을 폈다. 풍뎅이는 보랏빛 날개를 활짝 펴고는 부르르 떨더니 절 지붕 너머로 날아갔다.
부처님 오신 날 내게 떠오른 에피소드는 여기까지인데, 요즘은 이런 생각이 든다. 부처님은 과연 나를 어떻게 여기셨을까. 잘했다고 보았을까, 아니면 우주의 섭리에 간섭 말고 그대로 두었어야 한다고 책망하셨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딴은 내가 나이가 들었다는 징조가 아닌가 싶다. 지금까지 살아보니 세상일이란 대저 흘러갈 대로 흘러가게 두는 것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좋을 것도 그렇게 나쁠 것도 없는 것이 세상이치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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