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첩장을 보내는 마음
청첩장을 보내는 마음
  • 문틈 시인
  • 승인 2012.05.17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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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친지들에게 아들의 결혼 청첩장을 보내는 마음이 한편으론 무겁다. 혹여 ‘고지서’로 받아들일 사람은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래서 청첩 대상을 신중히 고르기로 했다. 그립고 보고 싶은 친구들, 내가 존경하는 친지들, 그리고 일가 친척들에게 보내기로 했다. 오다가다 만난 사람, 업무관계로 알게 된 사람들은 무조건 제외시키기로 했다.

몇 달 전에 고교동창이라며 전화가 왔는데 청첩장을 보내겠으니 주소를 가르쳐달라는 것이었다. 전화까지 해왔는데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기억이 가물가물한 옛 동창의 자식 결혼식에 가서 축하의 인사를 했더니 동창이 날더러 누구냐고 묻는 것이었다.

나는 대경실색하고 축의금만 전하고 돌아왔다. 내가 자칫 이런 실례를 저지르면 안될 것 같아 나하고 아주 친한 사람들로 한정했다. 아는 선배한테 전화를 했더니 “자네가 내 아이 결혼식에 왔었제. 이건 품앗이하는 것이니 자네 구화번호를 가르쳐주면 축의금을 보냄세” 그러는 것이었다. 은행 구좌번호로 축의금을 받는 것은 암만해도 나는 익숙하지 않다.

오래 전에 나하고 아주 친했던 작가 한 사람이 생각나서 그 사람에게 이물없이 전화를 했더니 내 목소리를 못알아 보았다. 그러면서 그날이 바쁘다던가, 어쩐다든가. 그건 내 실수였다. 이물없느니 하는 것은 내 생각일 뿐이었던 것이다.

그 실수 때문에 스스로 상처를 받고 나는 여러 날 심기가 편안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아무리 보고 싶은 사람일지라도 저쪽은 안 그럴 수도 있을 가능성에 주목하여 청첩대상을 더 줄일 방안을 찾기로 했다.
그랬는데 친한 고교동창 하나가 내 자식 결혼 뉴스를 동창회에 알려서 모두에게 휴대폰으로 쏘겠다고 한다. 나는 기겁을 하며 이것은 동창회 행사가 아니라며 극구 만류하는 촌극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어쩐지 청첩 대상자를 줄여놓고도 기분이 떨떠름했다. 그 원인은 말할 것도 없이 축의금 때문이란 것을 알았다. 내 자식 결혼식에 오는 이웃들이 축의금 문제로 인해 무거운 발걸음이 된다면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다. 그저 와서 기꺼이 축하해주고 자랑스러워해 준다면 이보다 더 좋은 결혼식이 있겠는가.

내 어릴 적엔 마을 사람들이 결혼식에 갈 때는 각기 전, 떡, 나물, 술병을 마련해 들고 갔었다. 성경에도 혼인잔치에 가서 사람들이 포도주를 나누어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 그 술도 마을 사람들이 추렴한 것이었을 것이다. 결국 술이 모자라 예수가 포도주의 기적을 베풀어 해결하기 했지만.

요즘 세상에 그렇게 하기는 어렵고, 노래를 잘하는 사람은 노래를 불러주고, 시인은 축시를 읊어주고, 부자 친구는 축의금을 내고, 화가는 그림 한 폭을 내놓고,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려면 결혼식을 돈이 덜 드는 간소한 잔치로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것쯤은 나도 잘 안다.

뭐 누구는 자식 결혼식 축의금이 몇 천만원이 들어왔다던가 하는 뒷담화가 돌고 있는 것을 보면 하객이 많이 오는 화려한 잔치를 선호하는 듯하다. 그래서 결혼식 청첩장이 사실상 모두에게 고지서가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용기를 내어 청첩장에 ‘축의금 사절’이라고 써야 내 마음이 편할 것 같은데, 그렇게 한다면 내 주제에 이웃친지들에게 시건방 떠는 짓이 되고 말 것이다. 청첩장을 보내면서도 내 마음 한 구석은 그닥 개운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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