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80대 노인의 퀵서비스
어느 80대 노인의 퀵서비스
  • 문틈 시인
  • 승인 2012.05.03 11: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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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사는 한 80대 노인의 이야기이다. 날마다 저녁 9시 반에 잠을 청해 새벽 3시면 어김없이 일어난다. 벌써 십년째 하는 일과다. 집안 거실과 화장실 청소를 소리 안나게 간단히 끝내고 조용히 아침을 차려 먹는다. 그러고 나면 대강 4시. 그때 아파트 문 앞에다 신문을 던지는 소리가 들린다.

신문을 주워와 세상 돌아가는 거대담론을 식탁에 펼쳐놓고 잠시 훑어본다. 맨날 그 뉴스다. 고위관리가 돈을 먹었다 어쨌다, 물가가 올라 살기 힘들다는 둥. 세면대에서 세수를 하고, 웃을 주섬주섬 입고 나면 네시 반 가까이 된다. 집안의 다른 사람들이 잠에서 깨지 않게 흡사 연체동물처럼 가만가만 아파트를 빠져나간다.

지하철역까지는 20분 정도 걸린다. 새벽 바람을 가르고 피곤이 풀리지 않는 다리를 빨리해 두 번째 지하철을 탄다. 첫차는 아파트 경비, 청소부, 시장 장사꾼 그런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어 늘 두 번째 지하철을 기다린다.

한 시간 가까이 졸다 말다 깨어나 이번엔 지상으로 나와 버스로 갈아탄다. 드물기는 하지만 조느라고 내릴 지하철역을 한참이나 지나쳐 버릴 때도 있다. 버스로 갈아타고 20분 정도 가서 내려 걷기를 십여 분. 직장에 당도한다. 아니, 알바를 하는 곳이다.

알바는 퀵서비스. 주로 시내 전역의 치과병원으로 맞춤형 치아재료를 전달해주는 일이다. 하루 서너 번 배달해주고 받는 돈은 2만원 5천원 안팎. 보통 하루 3건 정도를 배달하는데, 점심과 교통비를 제하면 하루벌이는 2만원 정도. 한 달에 50만원 정도가 총수입이다.

다행이랄까, 오래 전부터 어느 집에 몸을 의탁해 하숙생도 아니고 가족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지내오고 있다. 그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알바해서 번 돈의 반 정도를 그 집에 갖다 바친다.

그런데 이제는 알바 수입도 시원치 않아서인지 그 집에선 30년이 넘게 공생관계를 해왔는데 은근히 나가주었으면 하는 눈치다. 그도 그럴 것이 알바 수입도 적어졌으려니와 올해 나이가 82세나 되었으니 자칫 그 집에서 초상을 치르게 될지 몰라 은근히 신경이 쓰이는 듯하다.

이제는 어떡해야 하나. 평생을 성실히 살아왔지만 두 손에 쥐어진 것은 어찌해볼 수 없는 고독뿐이다. 지난 10여 년간 이런 배달 일을 하느라 지하철 계단을 하루 천 계단이 넘게 오르락내리락하다보니 가늘던 다리가 튼튼해져 몸은 아픈 데가 없다.

노인은 이렇게 없이 사는 몸으로 너무 오래 살까 되레 걱정이 태산이다. 30년 전에 부인과는 헤어졌고 결혼한 자식이 하나 있으나 아예 연락두절이다. 모든 것이 돈 못 버는 가난 때문에 벌어진 운명이다.

지자체에 가서 사정 이야기를 해도 호적상 자식이 있으니 지원받을 자격이 없다며 손사래를 친다. 언제나처럼 노인은 도시의 태양이 빌딩 사이로 떨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하루 일을 마치고 가시방석 같은 거처로 다시 피곤한 발걸음을 옮긴다.

이야기가 누군가의 꾀죄죄한 신세타령이 되고 말았지만 이 땅에는 이런 노인 같은 처지가 한두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다들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가난하고 외로운 노인의 생존을 안아주지 못하는 나라가 세계 몇 대 수출대국인들 무슨 소용이랴 싶다. 석양을 비껴 둥지로 날아가는 새들에게나 한탄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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