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이 싸구려 폐품만 보내오다”
“고종이 싸구려 폐품만 보내오다”
  • 이의준 광주전남지방중소기업청장
  • 승인 2012.04.19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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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의준 광주전남 지방중소기업청장
1893년 미국 시카고에서 만국박람회가 열렸습니다. 우리나라도 내세울 상품이 별로 없었지만 참가하였습니다. 고종은 스스로를 대한제국의 황제라 칭하며 일본, 러시아는 물론 청나라,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의 틈바구니에서 국제적 위상을 높이려고 안간힘을 다하던 시대라 박람회 참가는 남다른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행사장의 모습은 참담했습니다. 미국 <뉴욕헤럴드紙>의 한 기자는 대한제국 전시관에 대한 평가를 “고종이 싸구려 폐품만 보내오다”라고 했을 정도였습니다. 자동차, 전기제품은 물론 기관차까지 등장한 박람회에 우리는 고작 자수병풍, 짚신, 가죽신발, 장기판, 도자기 등을 보냈습니다. 관람객들은 대한제국 전시관에 소품은 있는데 정작 출품한 상품이 없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로부터 7년 후 파리 만국박람회에는 참가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대한제국에는 제조업체가 존재하지 않았으며 1899년에서야 생겼습니다. 국제박람회에서 겪은 좌절과 미국에서 전깃불을 보고 도깨비불이라며 놀랐던 <서유견문록> 저자 유길준이 돌아온 이후 서양문물의 습득은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1904년까지 공장은 222개로 늘어났고 1930년에 이르러서는 4천개를 넘어섰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주춤하던 우리의 기업은 1970년대 비약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이제 세계적인 기업을 비롯해 제조업체만도 33만개에 이르렀습니다. 세계에서 1위를 차지하는 품목이 50여개가 넘으며 무역규모가 1조 달러를 돌파했습니다. 유엔사무총장과 세계은행총재까지 한국 사람이 맡게 되었습니다. 국민소득도 2만 불을 넘어섰고 G20의 회원국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경제가 그리 밝지만은 않습니다. 국가는 물론 개인채무가 한계에 이르렀고 무역도 수출수입이 동시에 감소하는 등 안정적이지 못합니다. 고령화의 진전에도 조기퇴직자의 일자리문제가 심각하며 청년실업도 8%대에 이릅니다. 선진국 문턱에서 선진국처럼 저성장의 함정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인도나 중국의 높은 성장률은 먼 나라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고졸자의 85% 이상이 대학을 가고 졸업해도 웬만한 기업에 취직하지 않습니다. 젊은이 400만명이 대학생과 군인으로써 근로에서 제외되어 있습니다. 60만명의 외국인이 국내에서 일하며 본국에 송금하고 있습니다. 독일, 미국과 중동에 나가 일하던 사람들의 자리는 돈쓰는 유학생으로 대체되었으며 기업은 인력난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제 과거를 되짚어 고종이 보잘것없는 상품을 만국박람회에 보냈던 심정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말레이시아나 태국 등을 제치고 오늘을 이룬 것이 피눈물 나는 노력과 지혜였다면 지금쯤 땀이라도 다시 흘려야 합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사회에는 생산보다 소비가, 일하기보다 적당히 노는 풍토가 만연하고 있습니다.

기업가 정신이란 바로 고종의 폐품이라도 가지고 나갔던 용기이며 장보고의 무엇이던 나가 팔았던 개척정신이 아닐까 싶습니다. 일자리와 경제활력을 되찾기 위해 기업하기 좋은 지역을 넘어 ‘기업이 사랑받는 광주전남’을 만들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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