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龍), 전설 속의 그 이름처럼
용(龍), 전설 속의 그 이름처럼
  • 차소라 기자
  • 승인 2011.12.29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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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임진년(壬辰年)은 60년 만에 찾아오는 흑룡(黑龍) 해다. 임(任)은 10천간 중 물을 나타내고 검은색을 상징하며 진(辰)은 12간지 중 용을 나타낸다. 

▲신비의 상징
용은 상상 속에만 등장하는 동물로 기린·봉황·거북과 더불어 사령(四靈)이라 불려왔다. <훈몽자회(訓蒙字會)>에 따르면 용(龍)은 ‘미르 룡’이라 하여 우리말로 ‘미르’라 부른다.

용은 주로 물을 다스리는 동물이다. 주로 용궁에 살고 있는 왕을 용왕(龍王)이라 칭하고,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때는 용의 그림을 그려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다. 고서인 ‘삼국사기’에는 용이 출현할 당시 물과 번개 등이 동반됐다고 기록됐다.

서기 9세기 중반 일본의 국법승 엔닌이 기록한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の硏究)’에 따르면 개성사년(開成四年) 사월(四月), ‘오후 8시경에 순풍을 얻기 위하여 <관정경 (灌頂經)>에 의거하여 오곡(五穀) 공양을 마련하여 오방(五方)의 용왕에게 제사지내고 불경과 다라니를 독송하였다’고 기록돼 있다.

여기서 오방(五方)의 용왕이란 동방의 청룡왕(靑龍王), 남방의 적룡왕(赤龍王), 서방의 백룡왕(白龍王), 북방의 흑룡 왕(黑龍王), 중앙의 황룡신왕(黃龍新王)을 말하며, 바람을 다스려달라는 의미로 용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것이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세종 18년에 두 번에 걸쳐 흑룡 기우제를 지냈고, 세종 22년과 25년에도 북방 흑룡에 기우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특히 한국의 용은 ‘임금’을 상징하는 동물로서 임금의 얼굴은 용안(龍顔), 눈물은 용루(龍淚), 입는 옷은 용포(龍袍, 혹은 곤룡포) 등 '용'자를 붙였다. 용은 상징적인 존재로 왕의 혈통을 단단히 해줬을 뿐 아니라 ‘하늘에서 내린 인물’로 인식하게 했다.

드라마 <태왕사신기>에서 표현된 청룡 

▲동양과 서양에서 표현된 용
동양과 서양에서 표현된 용은 동·서양 설화에서 흔히 표현된 동물이지만, 그 의미는 매우 다르다. 일단 동양의 용은 성스럽고, 용기와 비상·희망을 상징하는 이로운 동물로 묘사된 반면, 서양의 용은 인간을 괴롭히는 존재로 표현된다.

동양의 용은 몸통은 뱀, 뿔은 사슴, 소의 귀, 매의 발톱을 가졌고 날개가 없어도 하늘을 날 수 있는 등 여러 동물의 장점이 모여 묘사됐다. 서양의 경우 몸통과 전반적인 생김이 공룡과 비슷하고 날개는 박쥐의 날개와 흡사하게 표현됐다.

동양에선 용이 구름과 비를 다스리며, 깊은 물속에 살지만 서양에선 입에서 불이 나오고 바위틈에서 산다. 또한 옛 부터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용은 꼭 죽여야하는 ‘괴물’로 표현된다. 영어권 나라에서는 용을 드래곤(Dragon)이라고 하는데, ‘도마뱀’을 뜻하는 라틴어 ‘draco’에서 유래됐다. 이처럼 서양의 용은 신성한 동물보다는 파충류에서 진화된 동물과 가깝다.

▲용이 꿈에 나오면?
해동명신록(海東名臣錄)에 따르면 율곡 이이(李珥)의 어릴적 이름은 ‘현룡(見龍)’으로 용이 나타났다는 뜻이다. 신사임당은 율곡을 출산하는 날 꿈에 검은 용이 날아와 현룡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용을 타고 날아간 꿈을 꿨을 경우는 높은 사람의 도움을 받아 일이 풀릴 꿈으로 해석되며 우물에서 용이 승천한 꿈은 태몽으로 큰 인물이 될 아들이 태어난다고 한다. 용이 대궐이나 청와대로 들어가는 꿈은 성공을 뜻하는 꿈으로 입신출세(立身出世)를 뜻한다.

용이 꿈에 나왔다고 해서 모두 좋은 꿈은 아니다. 용이 하늘에서 떨어지면 지위와 권세가 낮아지는 꿈이며, 용이 우물에 들어가는 꿈은 관재·구설·소송에 휘말릴 수 있는 흉몽이다. 용을 타고 승천하다 떨어져 몸을 다치는 꿈을 꿨다면 진행하는 일이 처음엔 잘 풀리다가 불길한 일을 당한다.

▲임진년에 일어난 일
1952년 임진년은 1월 18일 대한민국 평화선을 선언했던 해(年)다. 8월 28일엔 한국과 일본 간에 독도 분쟁이 첫 발생됐으며, 태어난 인물로는 2월 박근혜, 5월 배우 이덕화, 10월 수영선수 故 조오련, 12월 생물학자 황우석 등이 있다.

1892년은 1월 <반지의 제왕>, <호빗> 등을 저술한 영국의 소설가 톨킨이 태어난 해이며, 독립 운동가이자 교육자인 신익희가 태어났다. 신익희는 초대 국회부의장에 선출된 인물로서 친(親)이승만 정당인 대한국민당을 창당하여 활동했으나, 염증을 느껴 탈당하고 민국당 창당에 참여했던 인물이다. 그 후 김성수, 윤보선 등과 함께 민주당 창당에도 참여했다.

1832년 영국 상선 로드 암허스트 호가 조선 충청도 해안에 표착하여 교섭했으며, <피리 부는 소년>을 그린 프랑스 화가 에두아르 마네이 출생했다. 1652년엔 임진영영홀기라는 조선시대 병서가 발행됐다. 임진영영홀기는 조선 장수인 이목이 책을 썼으며, 군대 훈련 절차와 규정을 적은 작은 책자로 임진년 영남 감영에서 간행됐다.

1592년은 임진년에 일어난 사건 중 가장 유명한 사건인 ‘임진왜란’이 발발한 시기다. 또한 같은 해 8월14일 임진왜란 3대 대첩인 한산도대첩이 일어나 조선 수군이 일본 수군을 무찔렀다.

1412년은 경복궁의 경회루가 완공된 해이며, 여성영웅의 상징인 잔 다르크가 탄생한 해이기도 하다. 632년은 선덕여왕이 처음 왕으로 군림했던 해로 신라는 당시 수도인 금성에 첨성대를 세웠다.

▲용에 대한 기록
삼국사기에 보면 용에 대한 기록을 찾아 볼 수 있다. 기록을 보면 316년 4월 ‘서울에 우물이 넘치고 흑룡이 나타났다’는 기록과 455년 9월 ‘검은 용이 한강에 나타나다’라는 기록도 남아있다.

그 외에도 60년 가을 9월, 용 두 마리가 금성 우물 속에 나타났다. 우레와 비가 심하고 성의 남문에 벼락이 쳤다. 61년 봄 3월에 거서간이 죽었다는 기록과 백제 비유왕 29년 가을 9월에 검은 용이 나타났다가 잠시 후에 구름과 안개가 끼어 캄캄해지면서 날아갔다. 왕이 죽었다고 써있다.

용에 대한 설화도 흥미로운 게 많다. ‘한국구비문학대계’에 보면 옛날 안동 낙양촌에 신씨가 살았다. 신씨는 세력이 얼마나 강대했던지 하루는 용을 구워먹겠다고 사람들을 동원해 용이 살고 있는 용소에 발갛게 달군 돌을 수백 개 넣고 뜨거운 쇠꼬챙이로 연못을 쑤셨다. 화가 난 용은 보복을 하기로 하고 뇌성벽력을 치면서 엄청난 비를 뿌렸다. 그 비에 신씨가 살았던 마을의 뒷산이 무너지면서 민가를 덮쳐 살아남은 사람은 한 명이었고 손(孫)도 끊여 현재 낙양촌은 사람이 살지 않는 들판으로 남아있다고 기록됐다.

전남에도 용에 관한 설화(說話)가 있다. 장흥 보림사 터는 원래 용이 살던 곳이었다고 전해진다. 한 스님이 절을 짓기 위해 여러 곳을 찾아다니던 중 좋은 절터를 찾았다. 하지만 그곳은 큰 연못이 있었고 연못에는 청룡과 백룡이 살고 있었다. 스님은 고민 끝에 도술(道術)을 이용해 마을 사람들에게 눈병을 앓게 하고 눈병을 낫게 하기 위해선 연못에 숯이나 흙·돌 등을 던져야 한다고 소문을 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연못에 흙이나 돌을 던졌고 점차 연못이 메워졌으나 용들은 연못에서 나가지 않아 스님이 도술로 쫓아내고 보림사를 지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쫓겨난 용은 승천을 하기 위해 서로 싸우다 백룡만 승천하면서 꼬리로 친 곳은 ‘용문소’가 됐고 청룡은 싸움에서 패하고 상처를 입고 고개에서 죽었는데 그곳은 ‘청룡리’라고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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