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련한 그시절 그추억 5 - 헌책방
아련한 그시절 그추억 5 - 헌책방
  • 차소라 기자
  • 승인 2011.12.29 23: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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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한 매력을 풍기는 헌책방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에서 이런 대사가 나온다. “그냥 헌책들을 사와요. 그리고 닦아서 햇볕에 말려서 (책장에) 넣어요”, “이것(책) 봐요. 이 사람은 선물 받은 책을 (헌책방에) 팔았어요”

헌책을 모으는 것이‘취미’인 인하(손예진)가 한 말이다. 헌책 냄새가 좋아 방안 가득 헌책을 모은다. 헌책은‘묘한 매력’이 있다. 그 매력을 찾은 사람들은 아직도 헌책방을 찾는다.

책 팔아 용돈하던 시절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1980년대, 학생들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철이 없어서(?)인지 부모님께 참고서를 사겠다고 용돈을 받아 자연스레 헌책방을 찾았다.

특히나 신학기가 되면 헌책방은 발 딛을 틈이 없이 바빴다. 학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헌책방에서 ‘조금이라도 깨끗한 책’을 찾기 위해 매의 눈으로 책방을 뒤졌다. 부모님께 ‘새 책’을 샀다며 책을 내보일 때 헌책임을 들키면 안 된다는 두려움이 컸다.

광주에선 1980년에서 1990년까지, 10년 사이 헌책방이 가장 활성화됐다. 그 당시 책은 자습서는 2000원, 교과서는 5~700원 사이로 굉장히 저렴했다. 중·고등학생과 대학생이 주 고객층이었다.

그때는 장사가 얼마나 잘됐는지 책이 ‘없어서’ 못 팔정도. 심지어 서울 청계천에 있는 헌책방거리에서 몇 박스씩 사와 책을 팔았다. 그래도 ‘수학의 정석’은 항상 부족했다.

전남에서 광주로 ‘유학’을 온 친구들은 주말에 집에 내려갈 차비가 없어 헌책방을 전당포로 이용하기도 했다. 주인아저씨에게 참고서나 자습서를 맡기고 ‘제가 차비가 없어서 책 맡기고 차비 좀 빌릴게요’라는 학생도 여럿이었다.

헌책방에 ‘은밀한 매력’
헌책방의 묘미라고 하면 ‘보물’을 찾는 데 있다. 마치 큰 광산이라고 할까. 그 광산에서 금덩이를 캐고 다이아몬드를 캐는 것은 순전히 ‘광부’의 몫이다. 옛 고서(古書)를 찾거나 구하기 힘든 책을 ‘누가 찾느냐’에 달렸다.

많은 책들로 주인도 어떤 책이 있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자신이 찾을 수밖에. 촘촘한 책장에 빼곡이 채워있는 책들, 바닥에 쌓여있는 책 ‘탑’을 이리저리 뒤지면서 원하는 책을 찾았을 때의 기쁨은 이로 말할 수 없다.

헌책방에서 책을 사면 책 안에 저자의 사인이나 인사말, 책을 선물하는 사람의 글귀, 책 사이에서 나오는 나뭇잎 등이 나올 때도 있다. 책 끄트머리에 조금한 낙서를 볼 때면 이상하게 미소가 지어진다.

헌책방에서 만난 김병구(75) 할아버지는 “내가 샀던 책들 중 안 읽어봐서 샀던 책도 있지만, 읽었던 책을 구매한 경우도 있다”며 “새 책을 사는 것보다 옛날 향수에 젖어서 소설을 다시 한번 읽었지”라고 말했다.

 

 

지금은 10여 개의 헌책방만

지금은 광주 계림동 지역에 10여 개의 헌책방만이 남았다. 가장 성수기였던 8~90년대는 광주 시내 곳곳에 70여 개의 헌책방이 있었지만 거의 사라지고 난 뒤다. 컴퓨터가 나오고 복사기가 나오면서 책방은 점차 자리를 잃었다.

비단 헌책방 만의 문제는 아니다. 서점도 350여 개에서 100여 개로 점포수가 줄었다. 대학생들은 교재를 사기위해서 인터넷 구매를 하거나 제본을 뜬다. 굳이 헌책방을 찾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온 것이다.

계림동 헌책방은 대부분 적자를 보고 있다. 예전엔 학생이 주 고객층이었지만 지금은 50대에서 70대가 주로 찾는다. 팔리는 책도 소설책이나 토정비결 등이다. 참고서나 자습서는 왠만해선 팔리지 않는다.

책을 팔러 오는 사람도 없다. 사람들이 이사를 갈 때나 전화해서 책을 가져가라는 경우는 있어도 직접 찾아오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책을 팔러 와도 버스비도 안되는 가격에 그냥 버리기 일쑤다. 예전엔 책을 구하기 위해 청계천 헌책방 거리를 찾았지만 이제는 고물상에서 좋은 책을 건져오기도 한다.

요즘은 책값도 비싸다. 기본 만원부터 몇 만원 하는 책들까지. 헌책방에 가면 새 책에 절반도 안되는 가격에 책들을 살 수 있다. 흥정도 가능하고 새로운 문화를 알 수도 있다. 한번쯤 그곳을 찾아 독서를 즐기는 것은 어떨까?

 

 

‘담양서점’ 김귀수(75) 할아버지
   


▲ 사람들이 헌책방을 찾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헌책방을 다니는 재미라고 한다면 새 책방에서 구할 수 없는 책, 옛날에 나왔던 책, 자기가 꼭 필요로 했던 책을 이곳에서 발견했을 때 즐거움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찾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저도 즐겁고 뿌듯하다. 그때는 값을 떠나서 파는 나도 즐겁고 사는 손님도 즐거워 기쁨이 배가 된다. 그게 바로 ‘책 한권의 즐거움’이 아닐까 싶다. 故 홍남순 변호사도 단골이셨는데 그분은 특히나 고서를 좋아하셨다. 한번은 ‘퇴계 이황’ 선생 문집 31권을 가져가기도 했다.

▲ 2012년이면 책방을 하신지 43년째인데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책장사를 오래했는데 기억에 남는 게 한 두개가 아니다. 예전에 이상보 교수라고 단골손님이 있었는데 송순 선생의 유고집을 담양서점에서 발견했다고 하더라. <면앙집>이라는 책이었는데 발견된 적 없는 필사본이었다. 나는 있는지도 모르고 팔았는데 이 교수가 옹달샘이라는 책 속에 ‘담양서점에 가서 고서를 뒤적거리다 미발견된 면앙집을 찾았다’고 적었다더라. 나중에 물어보니 그 희귀한 책을 입수하고 저녁에 여관에서 잠을 설칠 정도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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