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돈 많이 버셨다면서요
새해 돈 많이 버셨다면서요
  • 문틈/시인
  • 승인 2011.12.28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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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세밑에 텔레비전에서 이태리의 노신부가 자기 성당 신도에게 두 손을 모아 "새해 돈 많이 버세요"하고 인사하는 것을 보고 살짝 놀란 일이 있다. 가톨릭에서 신부는 하느님의 중개자나 다름없다.

그런 하느님의 중개자가 신도에게 돈을 많이 벌라고 하니,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진짜 복을 비는 인사라는 생각이 든다. 일반인의 인사보다는 효험도 더 있지 않을까싶고.

이제는 우리도 그 비슷한 인사로 "새해 부자되세요" 하는 인사가 스스럼없이 오고 가는 세태가 되었다. 그러므로 돈을 많이 버라는 인사가 무에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사실 생각해보면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오 같은 인사는 너무 밍밍한 인사다. 별 감흥도 없다. 무슨 복을 어떻게 받으라는 것인지, 두루뭉실한 겉치레 인사 같은 느낌조차 든다. 그러니 세상 돌아가는 풍속을 볼 때 돈을 많이 벌라는 말이 딴은 가장 축복이 되는 인사일 성싶다.

흔히 성공한 사람들이라고 하면 대부분 무엇을 어찌어찌해서 부자가 된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성공의 잣대는 돈을 많이 벌었느냐, 아니냐다.
하지만 나는 이 같은 인사법에 서글픔을 느낀다. 돈이 세상을 움직이는 중심가치가 되어버린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영혼을 위로하는 신부까지 돈 많이 벌라는 인사를 그렇게 대놓고 새해 축복 인사로 한다는 것이 썩 탐탁지 않다는 말이다.

새해 인사를 나누는 만남에서 더 절실한 소망을 비는 축복의 인사를 기대하고 싶다.
그러면 다른 축복 인사는 없는가. 옛날 우리 선조들은 "자네 새해 떡두꺼비 같은 아들 낳았다며" "자네 큰아들놈이 대학들어갔다며"하고 덕담을 건넸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상대의 소망을 마치 이루어진 것처럼 미리 말해주었던 것이다. 구체적으로 상대의 소망을 명시하여 그 소망이 이루어진 것처럼 완료형으로 축복의 말을 해주고, 그것을 미래형으로 바꾸어 필연코 그렇게 되게끔 빌어주는 이 정겨운 인사라니. 이보다 더 좋은 새해 축복인사가 있을까싶다.

축복을 빌어주는 사람이 마치 나와 한 편이 되어 소망해주고 축하해주는 것 같지 않은가. 이런 새해 축복의 인사법은 모르면 몰라도 우리나라만의 발명품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것은 가정법이 아니라 꼭 그렇게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는, 그리고 이루어진 그것을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바람과 의지가 담겨 있다.

그러니 우리가 오래 버려두었던 선조들의 이 인사법을 되살려 이번 새해의 인사법으로 쓴다면 좋지 않을까.
"새해 아버님 중풍이 많이 나으셨다며"
"새해 둘째 아들 며느리를 봤다며"

이웃끼리 이런 덕담을 주고 받는 훈훈한 사회로 갈 수는 없을까. 이런 새해 인사를 건네는 장면은 생각만 해도 모든 사람들의 소망들이 금방이라도 이루어질 것만 같다. 자기의 위치는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준다. 그러므로 축복은 자기가 자신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진심을 담아 나에게 해주는 것이어야 한다.

법정 스님이 생전에 내게 말했다. "모든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하늘에서 눈이 오기를 빈다면 정말 눈이 내리는 것이오"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해 돈 많이 버십시오,가 더 좋다면 나도 그렇게 새해 인사를 할 수밖에 없다. 독자 여러분, 새해 돈 많이 버셨다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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