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을 안 보면 세상이 조용하다
신문을 안 보면 세상이 조용하다
  • 문틈/시인
  • 승인 2011.12.05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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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신문을 펴들면 세상이 시끄럽다. 마음 같아선 신문을 구겨서 내팽개치고 싶다. FTA를 두고 이제는 판사들이 나서서 정부가 나라를 팔아먹은 것이라고 규탄한다. FTA에 무언가 독소가 있긴 있는 모양이다.

나꼼수라는 비정규 방송이 여의도 광장에 5만명을 끌어모아 정부를 비판한다. 그 행진은 경찰도 못막는다. 국회의원 비서가 서울시장 보궐선거날 선관위 컴퓨터에 디도스 공격을 했다고 한다. 와,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새로 개국한 종편방송에 출연한 김연아, 인순이더러 공지영이라는 소설가가 트위터에 개념없다는 공격을 날리자 날선 입방아들이 난무한다. 여기 댓글에 정말 알바들이 동원된 것일까. 이 소식을 신문이 며칠씩 스포츠 중계하듯 한다.

언제부턴가 신문은 반은 사적인 공간이라고 할 트위터를 뒤져 작가, 연예인, 판사, 정치인 같은 이름깨나 알려진 사람들이 무어라고 했나 해서 금방 신문에 싣는다. 걍(그냥) 화가 나서 어느 개인이 입방아 찧은 말 한마디를 여론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북한송금과 관련한 비리주인공이 8년만에 미국서 쥐도 새도 모르게 귀국해서 수사를 받고는 쥐도 새도 모르게 미국으로 돌아갔다. 야당은 다 끝난 사건 가지고 특정인 죽이기라는 비난을 퍼붓는다. 하지만 아무도 죽을 것 같지는 않다.

국방부장관은 내년엔 북한이 도발해올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한다. 듣던 중 진짜 기분 나쁜 소식이다. 아파트단지 승용차 안에서 남편에게 불륜현장을 들킨 가정집 여자가 그 길로 한강으로 달려가 투신했다. 우리나라가 마침내 자살률 1위, 저출산률 1위에 올라섰다는 소식도 있다.

대선후보 1위를 달린다는 안철수 서울대 교수가 국회의원 강남 출마도 안하고 신당 창당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마디 하자 야당이 환호작약했다는 기사도 있다. 안철수 교수의 멘토로 알려진 법륜 스님이 이끄는 전국 투어 콘서트가 100회 기록을 한다고 한다. 정말 대단한 기력이다.

올해들어 전기료가 10퍼센트 가까이 올랐다 해서 나는 틈만 나면 전기코드를 살핀다. 그리고 청년 실업률 증가, 물가상승, 자영업 폐업, 가계부채 1000조 돌파....

신문을 보면 이렇게 세상이 어지럽게 돌아가는데 정부는 청와대 뒷산에서 아직도 '아침이슬'을 부르는지 코빼기도 안보인다. 아침마다 중구난방을 전하는 신문이 나를 불안하고 혼란스럽게 한다. 사람들이 세상을 향해 모두들 슝,슝, 디도스 공격을 하는 것만 같다.

이런데도 세상이 잘 굴러가는 것 같으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대가 약한 나 같은 사람은 나라가 곧 망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아니, 사회가 해체되는 것은 아닌가 하고 잠자리가 뒤숭숭하다. 내 경험으로는 자고 나도 세상은 결코 달라지지 않는다.

누군가는 친구를 사귀면 평화가 온다는데(이것도 신문에 나와 있다), 초야에 묻혀 사는 내가 저 쪽 산봉우리로 떠가는 구름을 친구로 만들 수도 없는 일이다.
"고추 다 따가고 남은 동네 고추밭에서 주워온 고추다 잉. 가을 뒤끝의 살짝 매운맛이 먹을 만해야" 고향 어머니가 보내주신 고추로 된장을 찍어 먹는 점심밥이 그저 눈물겹게 고마울 따름이다.

난들 세상이 어지러움을 어찌할 도리가 없다. 대체 어느 현자가 있어 지금 세상이 어디로 가는 것이라고 내게 말해주랴. 세상아, 넌 그렇게 네 갈 데로 시끄럽게 굴러가거라. 죄없이 살고 싶은 나는 무슨 업보가 있어 일평생 이리도 '온놈이 온말을 하는' 시끄러운 세상을 살아야 하는지.

고 노무현 대통령이 한참 언론에 시달리던 때 이런 말을 했다. '신문을 안 보면 세상이 조용하다.' 지금 내가 딱 그 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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