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올 것이 왔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 노영필 전남고, 철학박사
  • 승인 2011.11.03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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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지역에서 교사의 머리채를 잡은 패악한 학생의 행동이 중앙뉴스를 타고 전해졌다. 교단에 서있는 필자로선 누구보다 착잡한 소식이다. 평소, 중학교에 근무하는 동료교사들의 푸념어린 하소연을 귀가 따갑도록 들어온 터여서 아리도록 가슴이 미어진다. 갈수록 안하무인(眼下無人)인 학생들을 보노라면 미래 사회의 암울한 자화상이 그려지는 것이다.

얼마 전 우리 지역에서는 학생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었다. 인권신장의 차원에서 보자면 인권조례 제정은 진일보한 사회권이다. 인간의 존엄성이 존중되기 위해서 어떤 조건도, 어떤 단서도 붙어서는 안 된다는 것에 동의한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다. 어린이라는 이유로, 여성이라는 이유로, 장애라는 조건 때문에 차별이나 또 다른 취급을 받아서는 안 된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권리를 침해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뜻이다.

과연, 학교 현실에서 아이들의 인권을 고스란히 지킬 수 있을까? 교사가 머리채를 잡힌 이번 사건은 교권의 무력을 실감하고 학생인권을 무색하게 만든 사건들 중 빙산의 일각이다. 학생들 스스로 하는 자율이 전제되지 않은 현실에서 학생인권을 교사들이 가르쳐야 한다면 산 넘어 산이다. 지나치게 이기적인 문화에 찌든 아이들의 행태를 보노라면 인권이 발목이 되어 더 이상 교육을 펼칠 수 없겠다는 판단이 들 때가 많다. 그렇다고 인권조례의 숭고함을 선언적이고 상징적인 의미로만 밀어둘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인권이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전제되어야 할 것은 ‘우리는 인간이다.’가 합의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딜레마다. 타인에 대한 배려, 존중이 먼저가 아니라 자기 권리의 목소리로만 이야기되는 인권이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교권은 설 자리가 없어진 것이다. 이런 형국에 교사들이 날마다 학생들에게 머리채를 잡히고 주먹질의 샌드백이 되더라도 학교에서 강자로 분류된 이상 교사들의 인권은 거론될 수조차 될 수 없다.

인권이 보호되기 위해서는 강자이건 약자이건 모두의 노력이 공존해야 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인권은 어떤 상황에서라도 절대적으로 존중되어야 한다. 권력을 가진 자 앞에서 더욱 절대적으로 취급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인권이 상대적인 위치에 놓일 때 공유지비극에 빠지게 된다. 자유와 평등을 존중하는 사회인 이상 사회적인 책임과 의무가 전제된 그 다음에 인권이 논의되어야 하지 않을까.

필자의 오래전 경험담이다. 학생들과 대화로 지도가 안 되면 힘으로라도 기를 꺾어야 할 때가 있던 시절의 이야기다. 참교사로서 변명 같은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몇 번씩 노력을 쏟아도 학생의 반응이 교사를 향해 완전 무시하는 태도로 일관하면 정말 난감하다. 방약무인(傍若無人)한 학생들 앞에 인권의 숭고함을 흔드는 기억이 악몽처럼 되살아난다. 핵가족의 가족문화에 ‘내 멋대로’ 길들여진 아이들과 호흡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현실과 이상의 간극을 어떻게 좁혀야 할까?

이제 교사는 약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일체의 체벌금지 앞에서 교육현장은 새로운 모색을 요청받고 있다. 아이들에게 인간적으로 더 따뜻하게 다가갈 수 있는 교육적 환경을 만들어가자. 혁신학교의 흐름이 그 해결책일 수 있다. 뜻있는 교사들이, 일방이 아니라 쌍방향의 소통, 교사만이 아니라 학부모와 지역사회까지 한 데 결합된 배움의 공동체를 만들고자 고민하고 있다. 교사들의 업무를 경감시켜 더 충실한 수업, 더 따뜻한 생활지도, 더 희망찬 진로진학 상담, 더 신명나고 효율적인 행정업무 처리를 향해 내딛는 모색과 대안에 거는 기대가 간절하다. 그러한 희망이 빛고을혁신학교의 현실로 거듭날 때 인권조례만큼 필요한 교권조례도 존중될 것이다.

* 공유지의 비극 : 1968년 12월 13일자 『사이언스』에 실렸던 하딘(G. J. Hardin)의 논문에 실린 내용으로 개인주의적 사리사욕은 결국 공동체 전체를 파국으로 몰고 간다는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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