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 ‘도가니’에 빠진 아이들
입시 ‘도가니’에 빠진 아이들
  • 문틈/시인
  • 승인 2011.11.03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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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이야기다. 일본 도쿄 식당에서 수돗물을 주기에 망설였더니 왜 그러느냐고 재일 교포 출신의 식당 주인이 물었다. 대답 대신 생수는 없느냐고 했더니 “안심하고 드셔도 됩니다. 도쿄 수돗물은 수도꼭지에서 바로 받아 마실 수 있는 물입니다.” 그때 일본이 참 부러웠다.

그때도 서울에선 많은 사람들이 생수를 따로 사서 음용하고 있었다. 지금 수돗물을 바로 마시는 사람은 거의 없다. 더러 수돗물을 받아놓았다가 소독내가 가시면 웃물을 떠 마시거나 끓여 마시기도 한다고 하지만 대부분은 생수를 따로 사서 마신다. 그 생수 구입으로 쓰는 돈이 일 년에 수조원에 달한다는 통계를 본 일이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정부가 엄청난 돈을 들여 생산한 수돗물을 마시지 않고 민간업자들이 떠온 비싼 생수를 마시는 것은 참 기이한 일이다. 수돗물은 못 믿겠고, 생수는 믿을 수 있다는 이 두 얼굴을 우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사실 생수라는 것도 과연 믿을 수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도대체 그 많은 생수를 어디서 떠오는 것일까? 의문을 짚어가다 보면 생수도 못 미덥기는 마찬가지다. 이따금 생수에 대장균이 기준치 이상 검출되었다는 뉴스가 나오는 것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이런 식으로 우리가 이중으로 시간과 돈을 들여 낭비하는 일이 수두룩하다. 대표적인 것이 교육이다. 말이 좋아 교육이지 진실을 말하자면 입시교육이라는 말이 더 맞다. 학교라는 국가의 제도권에서 받는 교육을 무시하고 거의 모든 학생들이 유치원 때부터 학원에 다닌다. 학원비 부담 때문에 어떤 엄마는 김밥집에 아르바이트를 나갈 정도다.

학원비 부담이 일 년에 근 십조원 가까이로 추산된다. 이 정도면 이중 부담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 국가 사회는 이런 비뚤어진 사태를 고칠 생각도 하지 않는다. 이제는 암암리에 학교-학원의 이중 입시교육을 공인한 듯한 느낌이다. 학교 교사 중에는 학생들이 학원강의를 수강한 것을 전제로 하고 가르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이럴 바엔 차라리 수돗물 생산을 그만두고 민간업자들의 생수로 일원화하는 것이 국가예산을 덜 들이고 더 효율적일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공교육 학교를 문 닫고 사교육 학원에 맡기는 쪽이 이중 교육을 없애 학생들의 수험부담과 시간, 학비를 절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것은 비판삼아서 하는 극언이고, 교육은 공교육 중심으로 일원화해야 한다. 과외라는 것은 경쟁 측면에서 볼 때 남들은 하지 않고 자기만 해야 효과가 있는 것인데, 모두 다 하면 결국 하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다. 수돗물(공교육)을 못믿겠다고 버려두고 생수(학원)를 사 먹는 이중 구조라니 이것은 온전한 교육상태가 아니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다. 그런데 모르는 것이 하나 있다. 도대체 세상에 이런 괴이한 나라가 있을까라고 아무도 질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3까지 과외에 시달리는 우리나라 아이들의 눈물을 닦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절에 가서, 성당에 가서 명문대학 합격하기를 두 손 모아 빌 뿐이다. 아이는 오직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십대 시절의 인생목표다. “여러분, 고교시절 3년 죽어라 공부하면 일평생 떵떵거리며 남보다 더 잘 살 수 있습니다.” 어느 외고 교장이 입학생들에게 한 말이다.

그런데 이런 이중 교육에 코뚜레를 낀 채 아이들이 잃어버린 십대에 상처받고 그 트라우마 때문에 일평생 배려를 모르는 괴물로 살아갈 것임을 모른다. 남을 밟고 올라가 남보다 더 잘사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 이 나라 아이들의 미래가 두렵다. 그런 아이들을 만드는 나라가 무섭다.

수돗물을 마시든 생수를 마시든 그것까지는 모른 척하다가도 입시지옥에서 허우적거리는 아이들을 볼 때면 화가 난다. 입시에 시달리느라 밤 열시 넘어서까지 학원 책상에 코 박고 지내야 하는 우리나라 아이들을 생각하면 한숨이 나온다.

이것은 국가가 아이들을 학대하는 또다른 ‘도가니’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과연 한국의 교육이라는 것이 사실은 아이들을 ‘죽이는’ 교육이라는 것을 정말 알고 칭찬하는 것일까. 두개의 얼굴, 그것이 우리사회의 얼굴이다. 내 진짜 얼굴은 여기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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