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에서 말하는 획은 역(易)에서 근원 하는 것으로 서(書)의 점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동태로 음과 양의 개념을 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한자가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은 6~7세기 삼국시대이다. 통일신라 때는 구양순의 해서체가 유행하였으며 고려 후기와 조선 초에 부드럽고 유연한 조맹부의 송설체가 유행하였다.
18세기에는 한국 서예사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시기로 민족적 자의식을 바탕으로 한국적인 서풍인 동국진체(東國眞體)가 출현하였다. 동국진체는 조선 후기에 일기 시작한 조선적 서법을 말하며 중국 법첩의 범주를 벗어나고자 하는 중요한 자각적 예술 운동이었다.
그러나 조선말기 김정희는 이광사의 민족적 자의식을 바탕으로 한 자유로운 동국진체에 대해 비판하였으며 이(理)를 바탕으로 예를 담은 서체(추사체)를 확립하였다. 주자학에서 서예는 서법아언(書法雅言)으로 바른 말을 표현한 것으로 주자학적인 반듯함을 강조하고 격조를 중시한 추사 김정희를 중심으로 한 추사체가 조선말기에 유행하였다.
이후 동국진체의 세가 줄어들었지만 매우 중요한 자각적 예술 운동으로 남도를 중심으로 그 전통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동국진체는 실학의 영향으로 개성을 강조한 글자로 참된(眞)을 강조하여 인간의 자유로움을 표현하여 가짜 나(假我)에서 벗어나 참된 나(眞我)를 찾는 것이다. 18세기 당시 청에 대한 문화의 자부심을 가지고 우리의 심성을 드러내는 글자로 심층 깊은 곳에서 나온 우리만의 독특한 서예 양식이다.
옥동 이서(1662-1723)와 공재 윤두서(1668-1715)로부터 시작된 서체는 자유분방한 필치에 해학과 여유를 내재시키는 형상성을 추구하였다. 북송의 미불에게 영향을 받은 백하 윤순(1680-1741)은 온아하고 단정한 글씨를 썼으며 원교 이광사(1705-1777)는 윤순에게 사사받고 동기창의 영향을 받았으며 독자적인 서풍을 이루었다. 원교 이광사는 1762년에 신지도로 23년간 유배되면서 자신의 원교체를 완성하여 그의 동국진체는 남도지방의 선승들에게 이어져 혜장 등 필명 높은 선승들을 탄생시켰다.
일제시대 이후에는 허백련, 손재형, 황현, 구철우, 안규동에 전해져 남도의 서예를 풍부하게 하였다. 해방 후 진도출신의 소전 손재형은 한글 예서체의 새로운 서체의 완성으로 발전적으로 계승하였다. 보성출신 안규동은 허백련과 함께 활동하다 근원 구철우 등과 같이 광주서예연구원을 개설(1965)해서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내어 이 지역의 서예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소전 손재형의 동국진체는 장전 하남호에 이어져 스승의 전예 서체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경지를 일궜다. 안규동의 동국진체는 조기동, 이돈흥, 이규형, 고기임, 박경래 등에 이어져 동국진체의 전통은 호남을 중심으로 자리 잡고 근대 이후에는 남도를 중심으로 맥이 이어져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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