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와 헤게모니(6)
연대와 헤게모니(6)
  • 이홍길/광주민주동지회회장
  • 승인 2011.06.27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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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길/전남대 명예교수광주·전남 민주동지회회장
하늘을 따르는 자는 흥하고 하늘을 거스르는 자는 망한다는 명심보감류의 진리에 우리들은 익숙하다. 유교문화권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이를 별다른 저항 없이 수긍한다. 그런데 현실에 있어서 흥망을 결정짓는 하늘의 행위는 어디에서도 들어나지 않고 확인할 길도 없다. 하늘은 그냥 좋은 일 좋은 사람들을 보우할 것이라는 기대가 녹아난 것이 아닐까?

민족과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에는 위기에서 벗어나려는 것이 순천(順天)이고 민생이 유린당할 때는 그것을 차단하는 것이 순천이고 민주화가 역주행할 때에는 정상 괘도를 찾는 것이 순천일진데, 당연하게 위기와 유린과 역주행을 방치하거나 한술 더 떠서 방조하는 것이 역천(逆天)이 될 것이다. 전쟁의 국면에 있어서 기어코 이겨내려고 하는 억지스러운 전쟁, 인간들의 삶을 통째로 유린하는 싸움, 객관적 조건을 무시하고 주관적으로 승리를 환상하는 싸움들은 결코 승리하지 못했던 것 같다.

흥망을 결정짓는 것은 하늘의 행위는 아닐지라도 흥하고 망하는 것을 예상케 하는 대세는 있을 것 같다. 또 흥망을 결정짓는 중요 인자가 사람인 것을 생각하면, 전쟁도발을 그 시대 그 지역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흥망이 갈릴 수도 있었겠다. 그러므로 대세를 따르는 자, 사람들의 요구를 수렴하는 자는 흥하고 대세를 거스르고 사람들의 요구를 무시하는 자는 망한다는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맹자가 “나라가 스스로 망한 연후에 적들이 망하게 한다.”고 경고함을 보면 전쟁 도발자들이 경계해야 할 것이 많기도 많을 것 같다.

우여곡절을 거쳤지만 2차 국공합작은 순천이어서 흥하기 마련이었다. 전 중국인이 환영하고 침략에 반대하는 전 세계의 평화인민이 환영했다. 항일 전면전쟁이 폭발한 뒤에 소련은 남경정부에 4억5천만 달러의 군수물자를 원조하고 태평양전쟁이 발발한 후에 미국은 남경정부에 5억 달러를 차관해 주고 1942년에는 8억7천만 달러를 차관하였다. 국․공합작의 공동항일의 국제적 성과였다.

중국의 항전은 국제 반파쇼 전선의 중요부분이었다. 중국의 국제적 위신은 크게 높아져 1943년에 중국에 갖고 있던 미국과 영국의 특권이 조약을 통해 폐기되고, 이어서 유럽제국 또한 특권을 폐기하고 평등호혜조약을 체결하였다. 1942년에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에 의해 중국의 대국지위가 제기되어 1943년의 카이로 선언에서는 세계 4강국가로 확정되었다. 순천자가 흥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중국의 순천은 항일에 있었는데, 항전 후기에 이르러 남경정부의 소극항일 적극반공에다 중간당파 무당파인사들에 대한 정치압박을 자행하는 정책전환이 나타났다. 1941년 민주정단 동맹이 성립되어 “민주를 실현하여 항전역량을 강화하는 건국기초안”을 제출, 민주헌정운동을 촉진하였고 중공은 이를 중시하여 모택동은 민주 진보역량을 쟁취할 것을 지시하여 장개석과의 투쟁에 있어 중간당파와 연합하는 것을 항일만족통일전선의 중심공작으로 삼았다. 그리하여 중공은 1944년에 민주연합정부를 제기하고 인민자유․당치개방․지방자치를 선결조건으로 혁명적 삼민주의를 기초로 삼자고 주장하였다.

중공은 흡인 가능한 민주분자를 거두어 민주세력의 버팀목으로 위장 전신하는데, 장개석의 남경정부는 1945년11월 국민대회를 열어 중공의 민주연합정부 요구를 거부하였다. 연합정부론은 사회의 반공심리를 와해시키면서 順天이 되어 그 흥함을 예고하는데, 남경정부는 역천의 나락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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