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이라는 신은 죽었다(상)
‘우연’이라는 신은 죽었다(상)
  • 윤승현 /생명나무교회 목사
  • 승인 2011.05.23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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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재앙을 넘어서
윤승현 /생명나무교회 목사
미국의 인기 애니메이션 심슨가족에서 아이큐 280으로 소개된 인물이 있다. 아인슈타인의 아이큐가 150~200이니 대단한 인물에는 틀림없다. 그가 누굴까? 루게릭 병을 앓으면서도 세계적인 물리학자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스티븐 호킹 박사다. 요즘 호킹 박사가 <가디언>과 나눈 인터뷰가 화제다.

그는 인터뷰에서 “천국과 내세에 대한 믿음은 죽음이 두려워 지어낸 이야기”라고 못 박았다. “뇌는 부품이고 고장 나면 작동을 멈추는 컴퓨터와 같은 것이며 고장 난 컴퓨터에 천국이나 내세는 없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과학이 우주를 지배한다. 과학은 우주가 무에서 저절로 창조됐다는 것을 말해준다.”고도 했다.

호킹 박사는 지난 해 ‘위대한 설계’라는 책에에 이어 이번 인터뷰에서 그는 “우리가 사는 우주는 우연히 존재하는 것”이라며 “창조주 부재증명”을 거듭 확인했다. 지난 해 abc뉴스와 인터뷰에서는 “과학과 종교가 화해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종교는 권위(authority)를 기반으로 하고 과학은 관찰(observation)과 이성(reason)을 기반으로 한다는 근본적 차이가 있다”며 “결국 과학이 이기게 될 것”이라고 언급한 내용과 상통한다.

호킹 박사의 말은 맞다. 우주 공간 어디에도 기독교인이 믿는 천당이나 불교인이 믿는 극락은 없다. 그의 주장처럼 과학시대 이전에 영화를 누렸던 신화적인 신은 이제 장사지내야 한다. 더불어 얼마 전 초파일 행사에 난입하여 확성기를 틀어대며 “여기에 있는 사람은 다 지옥 갑니다.” 외쳤던 광신자의 코미디도 이제 멈추어야 한다. 특정한 신을 믿지 않으면 당신은 영원히 지옥에서 고통 받게 된다는 공포를 주입하는 것으로 유지되는 예배당, 성당, 불당, 모스크(이 모든 곳이 신화적 세계관에 포로가 된 근본주의자의 훈련소다.)도 다 영업을 정지해야 한다.

하지만 호킹 박사의 말은 틀렸다. 그가 근거하고 있는 과학의 눈인 시민권을 얻은 육안은 중세의 재앙은 근절했지만 다른 모든 인식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황제의 자리에 오르면서 근대의 재앙을 증폭시키고 때문이다. 사실 호킹 박사의 입장은 ‘이기적 유전자’, ‘만들어진 신’라는 책으로 유명한 도킨스의 오류를 똑같이 반복하고 있다. 예컨대 도킨스의 주장대로 인간이 유전자 운반기계에 불과한 것이라면 삶의 의미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모든 가치와 도덕, 그리고 의미는 유전자의 이기적 유희 앞에 무(無)로 변한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가득 찬 물질적 우주만이 덩그러니 남는다.

감각적 경험에 갇혀 광물에서 식물로, 식물에서 동물로, 동물에서 인간으로, 인간에서 신성(神性-Godhead)으로 전개되어가는 진화(창조)의 근본바탕과 추진력을 읽어내지 못한다면 이 세상은 허무주의와 자아도취의 광기로 넘쳐나게 된다. 도킨스처럼 생물학까지 갈 필요도 없다. 물리학적 차원에서 보면 모든 세계는 원자의 춤일 뿐이다. 더 명쾌하지 않는가. 울고불고 지지고볶고 싸우고웃고 하는 이 모든 게 그저 원자의 춤일 뿐이다. 선과 악을 논하는 것은 부질없는 몽상이요, ‘약육강식, 우승열패, 승자독식’의 논리가 판을 친대도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웃기는 짜장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호킹 박사와 도킨스는 결코 무신론자가 ‘육안(감각적 경험)’ 혹은 ‘과학(적 유물론)’, 혹은 ‘우연’이라는 신을 정성껏 섬기고 있다. 과학은 진정 중세의 어둠을 걷어내고 근대의 황홀한 빛을 선물한 축복이었다. 지구는 둥근 것을 확신하는가? 지구가 둥글다는 진리는 논리적 추론(심안, 마음)의 결과가 아니다.

육안(오감과 그 확장)으로 봐서 둥그니까 둥근 거다. 왜 중력의 법칙이 진리일까? 이것 역시 논리적 추론의 결과가 아니다. 현미경과 망원경으로 대표되는 객관적 대상에 대한 객관적(감각경험적) 관찰의 결과이다. 이런 객관적 사실을 아는 데 이성(심안)은 기껏해야 2차적으로 활용되는 도구에 불과하다.

갈릴레오가 피사의 탑에서 무거운 물체가 먼저 떨어질 것이라는 논리적인 추론을 육안으로 여지없이 혁파해버린 이후, 육안을 무기로 하는 과학(자연과학)은 인류 문명에 혁혁한 공헌을 세웠다. 인류는 실험과 관찰이라는 감각적 경험을 이용해 수없이 많은 자연법칙을 발견해냈고 그것을 생산에 적용하여 굴뚝 산업을 일으켰다. 거칠 줄 모르고 승승장구한 과학 때문에 인류 최초로 노예제 폐지, 보통선거권 확립, 여권신장, 평균수명 30년 연장과 같은 엄청난 축복이 인류에게 임했다.

하지만 빛이 밝으면 그림자도 더 짙은 법. 근대의 출발을 알린 과학은 초창기에는 “감각적으로(오감을 통해) 경험할 수 없는 것은 말할 수 없다.”고 겸손한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자신의 힘으로 이룬 비약적인 생산력의 발전을 목도한 과학은 넘지 않아야 할 선을 넘고 말았다. 오만에 빠진 과학이 “경험할 수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논리실증주의).”고 단언한 것이다. 이 지진이 있은 후 곧바로 거대한 재앙의 쓰나미가 지구를 덮치기 시작했다.

막강해진 과학은 온 우주에서 외면(오감을 통해 접촉할 수 있는 객관적 세계 - 물질과 에너지의 세계 - 양의 세계)만 남기고 내면(의식으로만 접촉할 수 있는 주관적 세계 - 의미와 가치의 세계 - 질의 세계)을 도려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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