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같은 나의 ‘어머니’
신앙같은 나의 ‘어머니’
  • 노영필 철학박사
  • 승인 2011.05.17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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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필/ 전남고,철학박사
신록 푸르른 5월입니다. 어버이날을 맞아 고향에 계신 어머니를 뵈었습니다. 5월이면 늘 하는 일인데도 이번에는 유난히 새삼스러웠습니다. 밥 한 끼 먹기가 바쁘게 서둘러 일어서려는데 어느 틈에 나가셨는지 상추며 미나리며 쑥갓을 한 웅큼씩 뜯어 바리바리 싸주십니다. 문득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사서 소비하는 것 밖에 없는데 어머니가 안계시면 어떻게 사나...’ 어머니께서 평생 몸으로 익혀 오신 농사일이며 살아가는 법을 일일이 받아 적어서라도 기록이라도 해둬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강상중교수의 ‘어머니’를 아시는지요? 재일동포 2세 정치학자로서 일본의 지식인 사회에서 인기를 달리고 있는 강상중 도쿄대 교수의 사모곡(思母曲) 『어머니』가 국내에서도 출간됐습니다. 작년 일본에서 출간돼 34만부나 판매된 베스트셀러 『어머니』. 그 책 속에서 “나라도 없었고 글도 못 읽던 그분…… 그러나 내게 세상을 가르쳐주셨다.”는 강교수의 ‘어머니’가 제 가슴을 파고듭니다. 강교수의 책 프롤로그에는 “어머니의 기억을 더듬는 것이 글을 아는 내게 글을 모르는 어머니가 위탁하신 유언이라는 생각이 드는 걸 막을 수가 없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 구절이 무겁게 마음에 와 닿습니다. 겨우 어버이날 방문으로 자식의 도리를 다하는 냥 생색내다 들킨 것 같아 더 부끄럽습니다.

강교수의 어머니는 그 시절 일본으로 건너간 사람들 대부분이 그랬던 것처럼 가난과 타국살이의 설움, 문맹(文盲)이라는 삼중고를 겪었던 세대입니다. “어머니’는 극심한 가난 속에서 시궁창을 뒤져 돈 될 물건을 건졌고, 거지로 전락한 동포를 거둬 돼지를 기르고, 때론 밀주로 만든 막걸리 장사도 하셨습니다. 그런 가운데도 제사는 늘 지극 정성으로 모셨습니다,” ‘뉴스’를 보면 누구보다 궁금한 게 많으셨던 그의 어머니, 바로 우리들의 어머니이십니다.

강상중교수의 어머니처럼 제게도 산 같고 강 같고 들녘 같은 어머니가 계십니다. 제게 어머니는 신앙이요, 고향의 숨결이며, 정신의 시원이십니다. 제가 자연과 가까이 하게 된 것도 어머니요, 삶의 지혜를 얻은 것도 어머니입니다. 어머니는 마음의 고향이며, 영혼이 닿는 곳입니다. 그런 어머니의 굵은 주름살이 나날이 깊어가고 하루가 다르게 머리카락이 하얗게 새가며 구부정한 허리로 몸을 움직임이시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아 뭉클합니다.

이 땅의 모든 어머니의 모습이 그렇듯 평생을 고단한 삶으로 이어가신 어머니, 관절이 다 달토록 헌신을 마다하신 어머니... 날씨가 흐리면 쑤셔올 통증임이 분명함에도 행여 자식들이 염려할까 봐 내색하지 않으시는 어머니... 좀 쉬시라 해도 “뭴(일) 없이 어찌 지낸다냐.” 그러시는 어머니... 고단함은 늘 당신의 일상이었고 당신의 삶 자체였습니다.

당신의 은혜만큼 세월이 들어차 벌써 50줄이 되어버린 제가 뒤늦게 깨달음을 얻어 고백합니다. 스스로 경험해 보지 못하고 절대 터득할 수 없는 것이 삶의 진리인 것을 말이예요. 자식을 키워보고, 삶의 우여곡절을 겪지 않고서는 절대로 공감할 수 없는 일이겠지요. 그래서 더 가슴 미어집니다. 평소, 도시생활, 직장생활로 제대로 된 자식노릇 한번 변변히 못해본 탓입니다.

어머니의 깊은 맛을 우리는 언제까지 간직하고 느끼며 살아갈 수 있을지 불안합니다. 이토록 자연을 등지고 사는 우리가 어머니로부터 배운 것 없이 어찌 살아갈 수 있을지... 야생에 내놓으면 한시라도 살 수 없는 존재가 된 채로 어머님의 사랑만 느끼고 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고향입니다. 어머니는 저의 삶입니다. 어머니는 자연의 멋입니다. 세월이 깊어질수록 조금씩 조금씩 그 맛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강상중교수의 어머니 유언이 새롭습니다. “너는 아버지나 내가 모르는 세상을 많이 가르쳐 주었다. 자세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런 세상이 있다는 것도 알았으니 그것만으로도 글을 모르는 나한테는 즐거웠어. 아들아, 고맙다, 정말 고맙다….”는 부모님의 유지를 들을 수 있으면 더없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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