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드라마가 아니다
삶은 드라마가 아니다
  • 채복희/시민의소리 이사
  • 승인 2011.05.1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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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복희 / 시민의 소리 이사
프랑스의 사회학자이자 언론학자인 장 보드리야르(1929~2007)는 학문적 성과도 남다르지만 성격이나 행동이 꽤 괴팍했다고 한다. 그는 현대사회에서 다양한 매스미디어에 의해 무수하게 양산되는 온갖 정보들의 일회성을 지적했으며, 그러한 짧은 생명을 가진 정보를 접하는 인간 군상이 정보의 중요도나 그것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 무감각해지고 있음을 예리한 시각으로 꼬집었다.

이러한 사회분석은 프랑스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나라 보통 시민들도 정보의 홍수 속에서 눈을 뜨고 내내 쓰나미 같은 정보에 휩쓸려 다니다가 그것들이 어떻게 되는지 미처 다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새로운 정보를 맞이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 정보라는게 사람 사는 세상 곳곳에서 벌어지는 온갖 사건들과 현상들, 이야깃거리들을 총칭한다. 그러한 것들이 허공에 떠돌고 사라지고 또 나타나고 하는 행태를 보이는 것이다.

보드리야르는 따라서 현대인들은 무엇이 진정 중요하고 어떤 것이 가치가 있는지 판단 기준을 망실했다고 보았다. 오늘은 이게 중요하다고 느꼈지만 내일은 기억조차 희미해지며, 그런 일들이 무수히 반복되고 있으니 결국 눈앞에 펼쳐지는 갖가지 삶의 모습들은 의미를 벗어버린 순간이미지에 불과하게 된 것이다. 이런 시각을 갖고 있었던 터라 보드리야르의 성격이 좀 괴팍하다 해도 충분히 이해가 될 것 같다. 그의 이러한 시각은 현대사회에서 개인이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필요하다 할 것이다.

최근 한국의 모든 매체들이 다투어 서태지-이지아 소송을 전국민적 관심사로 부각시킨 후 몇 매체들이 ‘서-이 보도 뒤에 숨은 진실’이라는 내용의 기사를 내보냈다. 이 기사는 서-이 소동 즈음에 대통령과 얽힌 BBK 사건 재판이 있었고 농협 전산망 사고와 저축은행 사건이 터져 있었으며 4.27 재보선 정국이 있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국내뉴스만 문제였나, 외국에서는 리비아를 필두로 중동의 피비린내나는 전쟁이 여전한 가운데 영국 왕자의 결혼식이 동화처럼 진행되던 때였다.

이런 정보들이 그야말로 와르르 쏟아지는가 하면 순식간에 사라져가고 있다. 아무리 전광석화처럼 지나가는 시간이라 해도 현실적 삶은 엄연하고 진지하며 더할 나위없이 소중한, 한번뿐인 그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삶은 TV의 드라마가 아닐진대, 진짜인데다 중요한 가치를 지닌 정보들마저 드라마처럼 비현실성을 뒤집어쓰고야 만다. 그리하여 모든 것은 마치 한 장면, 한 컷의 이미지로만 잠시 기억되다가 기억의 저편으로 물러가버리는 것이다.

BBK와 현 정권, 북한소행으로 밝혀진 농협전산망 사고의 진실, 금감원과 저축은행의 모럴 해저드, 재선거구 유권자가 내린 심판 등은 현실을 재는 척도임에 분명하다. 이러한 문제들이 어떤 방식으로 해결될지에 따라 우리 사회의 미래가 좌우되건만 서태지-이지아를 열나게 떠들어대는 TV 화면에 묻혀 모든 사안들은 이미지만 남고 모두 사라져만 가고 있다. 보드리야르식 회의만 남긴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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