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를 찾아서(5)
연대를 찾아서(5)
  • 이홍길/광주민주동지회회장
  • 승인 2011.05.11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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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길/전남대 명예교수광주·전남 민주동지회회장
살벌한 정치적 경쟁자에게 손을 내밀어 연정과 연합을 제안하는 것은 경쟁의 긴장을 뛰어 넘어서 함께 풀어야 할 대국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한나라당에 제의한 대연정은 망국의 지역 구도를 타파하기 위함이요, 죽산 조봉암이 제기한 민족 민주 반공 대연합은 통일의 대국을 겨냥한 백천간두 진일보의 큰 결단이었다. 그러나 그들 두 분은 경쟁세력의 압력과 음모로, 한분은 부엉이 바위에서 진일보해 자살하고 한분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행인지 불행인지 두 분들의 유서와 유언이 남아 있어, 우리들로 하여금 그분들이 남긴 생의 최후의 여운을 살피고 느끼게 한다.

노대통령의 긴 유서를 그대로 전재한다. 그의 사후 유서마저 정략적으로 보도되었다는 소문이 있기 때문이다. “사는 것이 힘들고 감옥 같다. 나름대로 국정을 위해 열정을 다했는데 잘못됐다고 비판받아 정말 괴로웠다. 지금 마치 나를 국정을 잘못 운영한 것처럼 비판하고 지인들에게 돈을 갈취하고 부정부패를 한 것처럼 비춰지고 가족, 동료, 지인들까지 감옥에서 외로운 생활을 하고 있어 외롭고 답답하다. 아들딸과 지지자들에게도 정말 미안하다. 퇴임 후 농촌마을에 돌아와 여생을 보내려고 했는데 잘 되지 않아 참으로 유감이다.

돈 문제에 대한 비판이 나오지만 이 부분은 깨끗했다. 나름대로 깨끗한 대통령이라고 자부했는데... 나에 대한 평가는 먼 훗날 역사가 밝혀 줄 것이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 아니겠는가? 미안해 하지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분명 한없이 원통했을 것인데도 삭이고 삭이다 보면 그리 되는지 죽음을 자연으로 운명으로 수용하는 노대통령의 마음이 그대로 적셔온다. 미안해하지 말고 원망하지 말라는 그의 당부에서 필자는 성인을 만나면서 자신의 왜소함에 전율을 느낀다. 참담함 속에 몸부림치면서 보냈을 그의 말년에 어떤 위로도 도움도 줄 수 없었던, 그냥 시정인이었던 자신이 부끄럽기만 하다. 백천간두 진일보한 용기를 갖은 사람들은 그냥 범인들과는 아무래도 다른 모양이다. 1958년 억울하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죽산 조봉암선생의 유언도 너무나 담담해서 그 숙연함을 가눌 길이 없다.

“법이 그런 모양이니 별 수가 있느냐. 길 가던 사람도 차에 치어 죽고 침실에서 자는 듯이 죽는 사람도 있는데, 판결은 잘됐다. 무죄가 안 될 바에야 죽는 것이 낫다. 정치란 다 그런 것이다. 나는 만 사람이 잘 살자는 이념이었고 이박사는 한 사람이 잘 살자는 이념이었다. 이념이 다른 사람이 서로 대립할 때에는 한쪽이 없어져야만 승리가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중간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편안하게 되는 것이다. 정치를 하자면 그만한 각오는 해야 한다.” 사법살인을 당하는 자신의 처지를 객관화시켜 그악한 정치투쟁의 현상으로 이해하는 죽산의 자세 역시 죽음을 자연으로 수용하는 노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이미 도인의 반열에 훌쩍 뛰어 오른 것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결벽을 놓을 수 없었던 그의 아픔이 필자의 가슴에 선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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