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로부터 배워야 할 광주교육
정조로부터 배워야 할 광주교육
  • 노영필 철학박사
  • 승인 2011.05.02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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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필/ 전남고,철학박사
안타까운 일이다. 광주 교육감이 언론의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분명 사건의 전후맥락이 있을 법한데 모교지원비 과다책정으로 물의를 일으켰다는 사과까지 있었다. 역사에서 진보에 대한 신뢰성은 시민들 앞에서 도덕적인 모습으로 확인될 때 담보된다. 물론 평소 교육감의 인품을 가까이 지켜본 필자로선 스스로 저지른 과오는 아니었을 터이기에 더욱 유감스럽다.

어느 조직이든 최고 책임자로서 ‘청렴결백’하기란 참으로 어려우리라. 그래서 권력을 분산시키고 견제를 하며, 후보자가 되면 청문회를 통해 검증하고, 선거를 통해 심판을 하는 것이 아닐까. 자리가 크면 클수록 권력의 크기만큼 불의에 늘 유혹받을 수 있기에, 일을 혼자만 할 수 없기에, 하다보면 본의 아니게 조직의 실수나 구조로부터 착오를 일으킬 수 있다. 그런데 왜 내겐 상큼한 실수로 다가오지 않는 걸까.

이번 사건을 접하면서 머릿속에 오버랩되는 것은 조선조의 왕 정조이다. 아버지 사도세자를 죽게 한 세력을 19년이나 중용하면서 정치를 했던 인물 정조. 이번 일을 정조와 결합시킨 것은 엉뚱한 견강부회(牽强附會)이고 침소봉대(針小棒大)일 수 있다. 역사적인 현실도 다르고 시대적인 상황도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도세자는 왜 죽었고, 왜 정조는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이 머리를 채워온다.
그가 떠오르는 왜 일까

얼마 전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진보’라는 상표를 달고 5%를 밑돌던 지지세로 일약 45일여 만에 39.8%의 지지로 당선의 감격을 만들었다는 자신에 찬 교육감의 소회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생각보다 보수적인 교육관료들이 많은 우리 지역의 개혁전선에선 한 줄기 빛이고 소금 같은 당선이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기에 이번 사건 앞에 더 민감하고 관심이 쏟아지리라.

정조는 즉위 후 세도가 홍국영에게 정치를 맡기고 자신은 정치현실에 등을 돌린 사람처럼 창덕궁 후원 규장각에 파묻혀 버렸다. 도서관에 파묻힌 정조를 본 대신들은 나약한 문인쯤으로 생각했을 터이고, 정조는 은인자중 하면서 5년 동안 신진관료를 길러냈다. 자기의 손발이 되어 뜻을 함께할 수 있는 신하들이 생기자 정조는 규장각을 설치하여 문화정치를 표방하는 한편, 비로소 개혁의 칼을 들었다.

지난해 당선자 취임준비위원회가 보여준 모습은 이러한 정조의 통치술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너무 급했다는 세평이다. 진보의 갈 길이 급하기는 하다. 할 일도 너무너무 많다. 그 급한 것이 이번 일의 발단은 아니었을까 조심스럽다. 여전히 진보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는 학교현장에선 볼멘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빠르게 복지부동하고 현장에서 발휘될 수 있는 자발적 역량은 자연히 최소화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금도 현장은 각종 현안 사업이 폐지 내지는 취소되었고 홍역을 앓을 수밖에 없는 조치들이 줄을 잇고 있다. 당선된 지 1년이 다 되어간다. 이번 모교지원비과다지출 건은 1년 안에 일어난 해프닝이라면 해프닝이다. 그러나 큰 사고를 예단할 수 있는 것은 사소한 부분에서 읽어지는 법.

지금껏 야심찬 모습으로 고군분투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는 이런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5개월여의 당선자 신분으로 보여준 감동적인 준비과정으로 우리 모두에게 희망을 끈을 던져주었던 것처럼 진보교육감의 집권이 곧 진보진영의 효자노릇을 톡톡히 할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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