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의 밑그림 (하)
연대의 밑그림 (하)
  • 이홍길/전남대 명예교수·광주민주동지회회장
  • 승인 2011.02.15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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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에 참여한 세력과 사람들은 공동 목표를 세워야 하고, 목표에 대한 깨뜨러지지 않는 진정성을 공유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당위가 항시 가능할까? 모든 존재는 현실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고 가능한 한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고자 한다. 운동가들은 어떤 형태로든 운동에 내포되지 않는 사람들을 무시하여 그들을 운동 또는 변화 에너지로 간주하려 않지만은, 그들도 여전히 존재하여 인간의 보편적 욕구를 수시로 드러내고 있다. 투표로 상황을 결정짓는 현실에서는 그들은 관건성적 역할을 수행한다. 아무리 싱그럽고 현묘한 도리라도 결국은 일상 속에서 그 가치를 증명하게 된다. 넘쳐나는 엘리트들의 열정과 소명감에서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지만 그것이 삶의 요체일 때 세속의 정서를 수용할 수밖에 없어, 운동가들의 진성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가치증명은 결국 일상에서

인민들보다 앞서가는 지도자, 서민을 뒤따라가는 운동가, 인민과 함께 가는 민주인사는 인민을 알고 인민의 참된 이익과 욕구를 수렴하면서, 그것들을 정환코저 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 같다.
쉬운 것은 없다. 자각한 서민들의 강력한 연대는 서민들이 그들의 복지와 권리를 정치적으로 보장받고자 하는 욕구가 있기 때문에 무난히 이루어 질것 같았지만 현실과 역사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서민들의 자기 정체성에 대한 자각이 다르다. 서민들이 무산자로 자각하거나 유산자로 자각한다고 해도 그 수준은 각각 달라 계급의식을 가지고 서민연대를 이루고저 했던 정치적 혁명적 시도들은 인류사에 있어 계급혁명의 잔혹사만 남긴 채 이상주의자들의 꿈을 무색하게 만든 채 실패하고 말았다. 꿈을 다시 꾸고 사회정의를 재조명해야 하는 현실에서 게걸찬 현실주의자들만 의가양양하지 않은가?
현대사회가 그 복잡성을 누적해 감에 따라 계급 이익을 초월하는 보편적 문제들이 산적하여, 이러한 현실에 새로 대처하다 보면 서민들의 복지와 권리가 상대적으로 더 절실한 것처럼 돼 버린다. 환경문제, 교통문제, 지구온난화 문제 같은 것들은 서민들의 계급적 욕구를 넘어서는 인류가 해결해야만 할 긴급한 문제로, 그것에 대한 대처가 조금이라도 소홀하거나 지체되면 대재앙이 될 것이 자명하다. 구제역 소동에 쩔쩔매는 우리들은 수백만의 소, 돼지들을 살 처분하면서도 그것들을 살릴 가능성을 적극 검토한 바도 없었던 것 같다.
사람 인플루엔자와 조류 인플루엔자가 교차 발생한다던지 인간 광우병도 발생하는 현실에서 계급이익에 천착하는 것은 이기적이라고 주장하는 인사들도 있겠지만 비정규 직장인의 양산과 실업군상의 만연은 결국 생존권 문제로 귀착되어, 역사를 19세기로 퇴행시키는 만행을 20세기도 아닌 21세기에 저지르게 되고, 결코 남일 수 없는 당신들이 동포 형제를 사람 된 최후 보루에서 소리 없이 밀쳐내는 결과들을 초래한다.

인간과 그 권리 존중 중요

 

사람이 사람을 존중하는 것은 무엇보다 먼저 그 생존을 존중하고 그 권리를 존중하는 것이다. 세속이 아무리 그 천박함을 빛내더라도 아직은 인간들의 삶이고 더욱이 민주주의 시대이다. 인간을 존중하고 민주주의의 제가치를 우리 모두의 것으로 하려는 결의들이 여러분의 불퇴전의 열정과 함께 하다 보면 결국 인민들은 민주 성채의 전사로 훌륭하게 귀환할 것을 믿어 의심치 말자. 그것이 자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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