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詩 - 다시 장벽을 넘어 생글거리는
신년 詩 - 다시 장벽을 넘어 생글거리는
  • 박몽구
  • 승인 2011.01.14 1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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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묘년 아침에

다시 장벽을 넘어 생글거리는ㅡ신묘년 아침에    (박몽구)


    요란하게 잔 부딪치며 새 세기 연 지 
    겨우 열 손가락 다 헤지 못한 채
    화려한 수사는 수채 구멍으로 잦아들고
   새벽 하늘 열리기까지 꼬박 두 눈 부비며
   깨어 있던 두 별들만 떨어졌다
   이제 더 이상 어제의 별에게 기대어
   어둠의 터널을 벗어날 수 없는
   밤 한가운데 서서 다시 장벽과 맞선
   담쟁이의 맨주먹은 눈물로 더욱 다져지는가
   매운 서릿발 헤치며 출발선에 선 덩굴손
   물러설 자리라곤 보이지 않아
   축측한 처음의 자리에서 올려다보는
   저 장벽의 가시관은 얼마나 울울한가
 

   한 군데도 남의 손 빌리지 않고
   한뼘 한뼘 제 땀과 피로 딛고 올라서는
   상처의 깊은 곳은 얼마나 맑은가
   낮고 어두운 데를 사랑하는 이들이 켜대는
   땀과 불면으로 차린 밥상 앞에
   빈 손으로 모여앉은 사람들은 새 아침에도 안녕한가
   여전히 갈라진 삼천리 볼모로 삼고
   저는 결코 피 흘리지 않은 채
   현청으로 닿는 낡은 끈과
   출처가 은폐된 지폐뭉치에 기대어
   대물림하는 자들의 뒷모습은 얼마나 왜소한가
   이제 제 손으로 해돋이를 일구어
   장벽을 넘는 험한 길 비춰야 한다
 

   영산강도 저 홀로 흥얼거리지 말고
   검은 물 소용돌이치는 함안보와
   날로 여위어가는 금강의 상처
   함께 앓으며 새 아침을 맞아야 한다
   다시 빈 손들 뜨겁게 마주 잡고
   자 차갑고 높은 설산 넘어야 한다
   어제의 너 미련 없이 지워 버린 채
   온몸을 던져 열어가는 바닷길은 얼마나 깨끗한가
   여리디여린 덩굴손들 서로 얽어매어
   거꾸로 누르고 선 바위를 타넘듯
   제 앞에 놓은 것들 버리고
   피 묻은 그리움 엮어 짜가는
   칼로 베어내지 못할 동아줄을 보라

   남북으로 엮어가는 씨줄이 되어
   동서로 갈라진 산맥들 하나로 잇는
   창창한 날줄이 되어
   비록 저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할지라도
  마침내 온몸으로 장벽을 넘어가
  어둠의 터널 환하게 밝히며
  꾸밈없는 미소 생글거리는 새 싹을 보라

 

-박몽구 : 광주 태생으로 전남대 영문과와 한양대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하였다. 1977년 월간 『대화』지 시 당선으로 등단하여, 『개리 카를 들으며』, 『마음의 귀』, 『봉긋하게 부푼 빵』, 『수종사 무료찻집』 등의 시집을 상재하였다. 연구서로 『모더니즘과 비판의 시학』, 『한국 현대시와 욕망의 시학』 등을 갖고 있다. 계간 《시와문화》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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