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산동의 별난 지명, 수박등과 짚봉산
월산동의 별난 지명, 수박등과 짚봉산
  • 김경대 기자
  • 승인 2010.11.24 13: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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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남구 월산동 정병연씨

농민들이 수박지게 메고 넘던 수박등
짚봉산, 기우제 지내던 제봉산서 유래 
 

▲ 정병연씨가 수박등 고개에서 낫으로 잡목들을 정리하고 있다. 고개가 휘어지는 오른쪽 귀퉁이에 지게꾼들이 목을 축이던 주막이 있었다.
어느 지역이나 마찬가지겠지만 광주에도 유별난 지명이 많다. 그 중 남구 월산동에서는 수박등, 짚봉산 등이 눈에 띄는 재미난 이름이다. 

‘수박등’ 하면 부처님 오신 날, 절에서 다는 둥근 모양의 종이등이 먼저 떠오른다. 노래방 천장에 달린 싸이키 조명도 수박등이라 불린다. 월산동의 수박등은 정말 속이 빨간 수박과 관련이 있다.

수박등(105m)은 백운광장에서 농성광장 쪽 오른편으로 뻗은 낮은 구릉지대를 말하는데 실제 등성이를 타고 걷다보면 그 길이가 꽤 길고 녹지 면적도 작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뚝 솟은 두 아파트 뒤편 비탈면으로는 외따로이 떨어져 있는 양철집도 보이고 통행로 양쪽으로는 마치 거미줄처럼 구획된 조각 밭이 정성스럽게 가꿔져 있어 ‘도심 속 섬’에 온 듯한 기분이다.            

신우아파트 뒷등 어름에서 숨을 고르려 멈춰서니 광주의 사위가 한 눈에 들어온다. 무등산, 금당산이며 우뚝우뚝한 아파트 단지며 광주천이며 충장로가 발 아래로 내려다보인다.  

수박등이라는 지명은 머지않은 옛날, 농사꾼들이 지게에 수박을 싣고 넘나들던 길이라는 데서 유래한다.

“농민들이 신암방죽(지금의 풍암저수지) 부근 밭에다 수박, 고구마 이런 걸 많이 심었어요. 여름이면 남자들은 지게에, 여자들은 소쿠리에 수박을 가득 지고 이곳 수박등을 넘어 다녔죠. 예전엔 양동시장이 지금 구동체육관 자리에 있었거든요. 그래서 수박등이 된 거래요.”  
수박등 고개에서 낫으로 잡목을 정리하고 있던 정병연(65)씨의 말이다.

월산동 큰 길에서 무진중 방향으로 넘어오는 찻길은 원래 있던 수박등 길은 아니다. 지게꾼들이 넘던 수박등은 구불구불한 소로 길로 리어커도 못 지날 정도의 넓이였다고 한다.

“고개 아래에 주막이 한 집 있었어요. 지게꾼들이 목을 축이고 가기엔 안성맞춤이었죠. 그 때가 얼마 되지 않아요. 25년이나 30년 쯤 됐을 걸요?” 간선도로가 뚫리기 전에 풍암·금호지구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가장 가까운 지름길이 수박등이었던 셈.

당시의 월산동은 건물하나 없는 허허벌판이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수박등 부근에 모여 산 것은 지금으로부터 불과 30여 년 전의 일로, 도심 개발로 밀려난 이들이 오갈 데 없어 모여 든 곳이 이곳 수박등이다.   

수박등 고개 주변으로는 낮은 슬레이트 지붕을 인 가옥들이 옹기종기 등을 기댄 채 서 있다. 찻길에서 내려 걷지 않으면 밖에서는 전혀 보이지도 않는다. 주민들이라곤 거동이 불편한 홀몸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남구에서 모정과 체육시설을 겸한 월산근린공원을 조성해 놓았지만 사람이라곤 개간한 밭에드문 드문 몇이 매달려 있을 뿐 한가로이 담소를 나누거나 운동을 하는 이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 수박등고개에 서면 낮은 슬레이트 지붕 너머로 광주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월산동(月山洞)이란 수박등 위쪽에 자리한 덕림산(94m)이 달덩이처럼 둥글고 덕스러워 달맞이하기 좋은 곳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때문에 예전엔 시민들의 화전놀이터로 이름이 높았다고 한다.

월산마을을 품고 있는 짚봉산(128.5m)은 옛날 기우제(祈雨祭)를 지내는 산을 이르던 제봉산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기우제는 또 ‘무제’라고 불리는데, 고대 중국 고전에 등장하는 무우제(舞雩祭)에서 온 말이다. 

제봉산은 각 고을마다 하나쯤은 있을 만큼 흔한 산 이름이다. 광주에서는 이곳 말고도 서구 양동초등학교 뒤편 90m 남짓한 산의 이름이 바로 제봉산.

따라서 비슷한 역할을 하며 같은 이름을 얻게 됐으나 가까이 있는 경우 따로 구별하기 위해 ‘제’자를 ‘짚’자로 바꿔 부르는 수가 종종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짚봉산이 된 것.  

보행의 시대에 짚봉산으로 불리다가 마이카 시대가 된 지금 짚봉터널이라는 지명으로 더 친숙한 이곳은 뚜벅이와 자전거족들에게는 최악의 코스로 손꼽힌다. 터널 입구에는 ‘보행자도로가 없으므로 터널을 지날 수 없다’는 안내판이 길을 가로 막는다.

곡선의 여유로움보다 직선의 편리함만을 좇은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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