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님이 기우제 지내던 용 연못
원님이 기우제 지내던 용 연못
  • 김경대 기자
  • 승인 2010.11.17 17: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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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동구 용연동 용연마을 김변현 할아버지

당산제·농악, 끈끈한 마을 유대 눈길  
무돌길 여행객 농작물 손 안 댔으면

▲ 김변현 할아버지.
어느덧 단풍이 드는가 싶더니 바짝 마른 낙엽들이 길 위를 나뒹군다. 바람까지 잔뜩 부는 날 찾아간 광주 동구 용연동 용연마을은 부동의 자세로 적막한 얼굴을 한 무등산만큼이나 조용했다.

용연마을은 광주 사람들의 식수를 공급하는 제2수원지와 용연정수장이 위치한 청정마을이다. 최근에는 무등산 ‘무돌길’이 개방되면서 더 유명해졌다.       

할머니가 몸이 좋질 않아 근처 노인요양원 신세를 지게 되면서 혼자 집을 지킨다는 김변현(82) 할아버지는 말벗이 찾아와 반갑다며 마을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왜 용연(龍淵)이냐믄 말이야. 예전에 광주에 가뭄이 들면 원님이 이곳에 와서 기우제를 지냈어. 수원지 위로 올라가믄 용이 승천한 연못이라는 큰 연못이 있는디 돼아지 목을 베 못에 던지믄 하느님이 깨끗치 못하다며 씻을라고 비를 내래 주었다는구만.”

해방 이후까지 지냈다는 기우제는 최근에 동구문화원에서 발굴해 광주민속예술축제에 출전하기도 했다. 마을은 기우제 말고도 1960년대까지 당산제를 지내는 등 옛 전통이 잘 보존된 보기 드문 토종마을이다. “김해김씨, 경주김씨, 밀양박씨가 오래 전부터 터를 잡았제. 영암서 왔다는 우리 김해김씨 할아버지로부터 내가 15대째 손인께 못해도 500년은 돼앗을 것이구만.” 

한때는 100호가 넘었다는 마을은 지금은 60여 호 20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우리 어렸을 적에는 동구에서 큰 마을하믄 첫째가 용연, 둘째가 소태 이랬어. 근디 6·25때 많이 나가부렀제. 밤에는 공비들이 와서 묵을 것 내놓으라 하고 낮에는 경찰들이 와서 구찮게 하고. 긍께 모다 딴디로 나가불고 돌아오들 안했제.”

이렇듯 고난을 함께 겪으며 동고동락한 탓인지 마을 사람들의 유대는 남다른 면모가 있다.
“설 쇠믄 바로 농악 준비하니라고 야단이여. 고깔도 만들고 상모도 붙이고. 그렇게 정월 보름 꺼정 한 20여일을 계속 쳐. 동구에 경사났다 하믄 우리 마을 농악대가 판을 잡았제. 근디 한 3년 전부터는 안 해. 노인들 돌아가시고 벌어먹기 힘든 게 도체 사람들을 모을 수가 없어.”

마을회관 옆으로 따로 마련돼 있는 농악전수관만이 영화로웠던 지난 흔적을 간직한 채 서 있다. 마을회관에는 또 청년회에서 마련해줬다는 찜질방이 눈길을 끈다.
“청년회가 참 잘해. 청년이라고 해도 다 50, 60 먹은 사람들인디 노인들 등 지지라고 3년 전에 화목보일러로 찜질방을 만들어줬당게. 이틀 동안 너릿재 넘어간디 구도로서 간벌한 것을 줏어다가 땔나무를 상당히 해놨어. 생각이 참 고마워.”  

▲ 무돌길 개방으로 무등산의 가을 정취를 즐기려는 탐방객들의 마을 방문이 늘고 있다. 하지만 주차장, 간이화장실 등 편의시설이 마련되지 않아 애꿎은 주민들 불편만 늘어났다.
마을에 찾아온 최근의 변화는 무돌길 개방이다. 하지만 주민들은 썩 반갑지만은 않단다.
“관에서 하는 일을 뭐라 하겄는가마는 먼저 주차장도 만들고 간이 변소도 만들고 시작을 했으믄 쓰겄어. 주말이믄 길이 차로 빡빡해브러. 회관이고 어디고 무작정 들어와서 화장실 빌려달라 허믄 못쓰게 헐 수도 없고.”

둘레길 여행자들에게 당부 말도 빼놓질 않았다.
“동네 밭에 있는 무시를 잎싹만 놔두고 막 뽑아 가. 시장에서 사믄 몇 천원이나 한다고. 농사짓는 사람들 맘도 생각해야제. 그런 것 보믄 속이 좋겄어?”

마을에는 또 정수장 시설을 늘리는 확장공사 때문에 한바탕 소란스럽다.
“남양건설이 터널을 뚫어서 통수관을 새로 논디야. 식수가 모지란게 정수장을 넓힌다제 아마. 주민들은 먼지 나고 시끄럽고 불편하제. 근게 주민 불편 없이 허라고 프랑도 붙여놓은 거여.”

▲ 마을에는 정수장 시설을 늘리는 확장공사 때문에 한바탕 소란스럽다.
‘황소골’이라 불리는 골짜기는 넓은 농토가 발달하지 않아 주민들은 모싯잎 재배로 가구소득을 올리고 있다. “논이 없응께 주민들이 밭에 많이 매달리제. 예전에는 포도작목반이 있어서 포도를 쪼까 했는디 날씨가 안 맞응께 포기해브렀어. 요즘은 모싯잎을 해 추석 때 많이 팔아.”

김 할아버지는 오래오래 장수하시라는 말에 “요즘 80은 장수가 아니여. 100살은 넘어야 장수제. 허허.” 웃으시며 돌아 나오는 기자를 문 밖까지 배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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