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습지에서의 단상
담양습지에서의 단상
  • 박경희
  • 승인 2010.11.05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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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희(광주전남녹색연합 자연생태팀장)

한파가 찾아왔다고 두꺼운 외투를 꺼내 입고 요란스럽게 며칠을 보냈다. 몇 날이 흐르자 그런 날씨가 언제 왔었나 싶게 따뜻한 햇살이 머리 위에서 내리쬐는 날이 다시 찾아왔다. 한낮 따뜻한 햇볕 아래 앉아 있으면 아침, 저녁 쌀쌀한 바람이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지나는 길마다 알록달록 가을 색으로 몸을 치장한 나무들을 품은 산과 한 여름 농부의 땀을 보상한 듯 추수를 끝낸 텅 빈 논이 한 폭의 그림이다.

담양습지 가는 길. 영산강이 바라보이는 길목에 들어서기 전까지는 이렇듯 마냥 예쁘기만 한 풍경이 곳곳에서 자연의 자태를 한껏 뽐내고 있다. 마치 가을 단품 구경 가는 것처럼 마냥 들뜬 마음이 영산강이 보이는 길목에 오자 미안한 마음으로 돌변한다.

용산교 앞. 영산강 사업 7공구와 8공구 구간의 경계. 포클레인과 중장비들이 오래전부터 거기 그렇게 있었던 것처럼 당당히 자리를 잡고 있다.

국내 최초 습지보호구역 담양습지

철새 조사 때문에 매달 한 번 이상은 만나고 있는 담양습지는 영산강 사업 8공구 구간이지만 그동안 습지보호구역 때문에 쉽게 공사를 진행하지 못했었다. 담양습지는 영산강 상류구간으로 2004년 국내 최초로 하천습지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는 곳이다. 천연기념물인 황조롱이와 멸종위기종인 매, 삵, 맹꽁이 등을 포함한 다양한 야생동물과 백로, 황로 등 철새들의 서식처이기도 하다.

매년 5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는 자연생태학습장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곳이지만, 이곳 역시 4대강 사업에서 비껴갈 수가 없었다. 지난달부터 본격적으로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담양습지에서 경관 상 우수하고 철새들의 서식처이면서 야생동물들의 은신처가 되고 있는 대나무 군락의 일부 절개와 자전거 도로 설치 등이 주요한 사업 내용이다.

지난 달 회원들과 함께 담양습지를 답사하고 대나무 숲에 들어가 그 절경을 만끽하면서 아직 사업이 시작되지 않은 이곳만은 꼭 지켜내자고 외쳤었는데, 그 외침과 다짐이 마냥 부끄럽게 되었다.

담양습지 탐방안내소에서 임의보로 이어지는 강둑을 영산강과 함께 걸었다. 곳곳에서 메뚜기가 뛰어다니고, 나비가 날아다니고, 멀리 바라보이는 강에는 오리 떼와 추운 겨울이 오고 있는데도 떠나지 않고 있는, 이곳에서 겨울을 보낼 백로들이 한가로이 먹이 활동을 하고 있었다.

평화로운 모습. 하지만 조금 더 걷자 여기저기 파헤쳐져 속살을 들러내고 아파하는 강을 만나면서 강의 평화도, 내 마음의 평화도 깨져 버렸다. 

생명들 아픔 느끼는지 ‘나’에게 묻는다

지구상에 살고 있는 생명 있는 모든 것들에게 ‘물’은, ‘강’은 삶의 기본 조건 중의 기본일 터. 자연과 그 자연 속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들이 인간과 보이지 않는 관계의 끈으로 연결되어 어느 한쪽에 이상이 생기면 반드시 그 영향이 모든 관계들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당연한 사실을 여기저기 파헤쳐지고 있는 담양습지에 와서 다시금 느끼는 것이다. 

‘공존’. 나와 너의 동등한 권리를 인정하고 서로를 배려하고 양보하면서 공존은 가능해진다. 자연과 인간의 공존은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인듯하다. 이미 인간에게 많이 와 있는 관계의 힘을 자연으로 돌려주며 균형을 이뤄가는 것, 인간 편리 중심의 가치지향을 변화시키는 것에서부터 공존의 삶은 시작될 수 있지 않을까?

그 시작은 나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작은 깨달음을 오늘 담양습지에 와서 깨닫는다. 나에게 묻는다. “넌 절실하게 바라고 있느냐? 영산강이 깨끗하게 우리 곁에서 흐르기를, 영산강이 품고 있는 생명들의 아픔을 너도 절절하게 느끼고 있는 것이냐?”

‘너’가 아닌 ‘나’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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