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을 알면 나를 알고 한국이 보인다”
“고봉을 알면 나를 알고 한국이 보인다”
  • 김경대 기자
  • 승인 2010.10.14 15: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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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광산구 광산동 너브실 마을 강기욱씨

▲ 강기욱씨.
백우산(白牛山) 품속에서 잠들어있던 ‘너브실 마을’이 오백년 깊은 잠에서 깨어나고 있다.

‘한 달이면 새로 산 휴대폰이 구형이 되는 세상’에 살면서 지금 우리가 몰려가는 곳이 과연 옳은 길인지 문득 불안해지는 시대다.

뒤도 곁도 없이 앞만 보고 내달린 만큼 우리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멀리는 온 듯싶다. 하지만 우리가 치러야 했던 상실감의 크기 또한 만만치 않았다. 혼돈의 시대에 다시 길을 묻는다. 너브실 마을에서 오백년 동안 잠들어있던 성현의 말씀을 좇아.

광주 광산구 광산동 너브실 마을에 닿으니 망치 소리가 우렁차다. 30여명 남짓한 주민들이 모여 사는 마을에 무슨 역사가 벌어지고 있는 걸까. 고봉(高峰) 기대승(奇大升) 선생을 기리는 월봉서원(月峰書院)으로 거슬러 올라가니 서원 주변으로 고봉 유적지공원 조성사업이 한창이다.

어린이예절학교 등을 위한 교육관을 비롯해 철학자의 길로 불리는 백우산(341m) 산책로 정비사업까지. 철학자의 길은 ‘조선 최고 사상가들과 함께 떠나는 위대한 나의 발견’을 주제로 문화재청의 공모에 당선돼 40억 원을 들여 강과 산을 아우르며 13.6km를 이어 송산유원지까지를 이을 계획이다. 북으로는 장성 필암서원까지 9.6km를 잇는다. 순례자들은 철학자의 길을 걸으며 하서와 고봉을 잇고 강과 산을, 마음과 마음을 잇게 된다.     

월봉서원에서는 지난 2008년부터 문화재청 지원으로 광주지역 문화예술단체인 ‘修相한 교육문화공동체 결’ 주최의 서원 체험행사가 3년째 계속되고 있다. 9일에 이어 오는 23일 오후에 오백년 전의 시대와 인물을 재현한 대동연극 ‘드라마 판타지아’가 서원을 무대로 펼쳐진다. 

이밖에 정기 상설 프로그램으로 매주 수요일에는 어린이선비교실이, 1년에 다섯 차례 열리는 서원스테이, 격주 토요일 오후 2~5시까지는 느림투어가, 그리고 해마다 안동 도산서원 등과 영호남선비문화교류를 실시하고 있다.   

▲ 월봉서원 전경. 오는 23일에는 오백년 전의 시대와 인물을 재현한 대동연극 ‘드라마 판타지아’가 월봉서원을 무대로 펼쳐진다.
너브실 마을에서 16년 째 월봉서원과 고봉학술원을 지키며 사는 강기욱(48)씨에게 새롭게 살아 꿈틀대는 월봉서원의 현재적 의미를 물었다.

고봉학술원의 책임연구원이기도 한 강씨는 한마디로 “500년 전 성현과의 대화를 통해 나를 되돌아보고자 하는 열망”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고봉은 퇴계 선생과 함께 중국의 주자학에 한국적 사유를 접목시켜 더 깊은 사유체계로 발전시킨 분”이라며 “고봉을 모르고서는 한국의 근원과 나라는 존재의 의미를 설명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그에 따르면 고봉사상은 한 사상적 요소인 일원론을 철학에 가미한 것으로 원효의 일심(一心)론을 800여년 만에 성리학과 접목시켜 한국적 사유의 기틀을 잡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지역과 나이를 초월해 퇴계와 8년 동안 114통의 편지를 통해 조선시대 최고의 ‘사상로맨스’로까지 불렸던 사단칠정 논쟁은 우리에게 익히 잘 알려진 일화. 16세기에 시작된 사단칠정 논쟁의 끝은 19세기 다산에 의해 비로소 완성이 된다.

강씨는 “새삼 고봉이 주목받는 것은 우리나라가 정체성의 위기, 근원의 위기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며 “고봉의 사상을 통해 한국과 한국인의 정체성을 새롭게 찾아야 할 때다”고 강조했다.

▲ 고봉이 죽자 그의 아들이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며 머물렀다는 칠송정.
강씨에게 왜 퇴계와 남명처럼 고봉이 잘 알려지지 않았는지 물었다.

그는 “선양 사업을 잘못해서이지 실제 역사는 그렇지 않았다”며 “동학 이래 일제에 의한 역사 지우기에 이어 박정희 집권 때 심각한 왜곡과 불균형이 호남 소외를 조장했다”고 원인을 진단했다. 조선시대의 권력기반은 어디까지나 평야와 물산, 인재가 풍부한 호남이었지만 근대의 역사왜곡과 권력이 호남지역 선양사업의 발목을 잡았다는 것.

그 중 학자로서 명성이 퇴계와 율곡 등에 뒤지지 않았던 고봉은 그 명성이 남달랐지만 46세로 요절하는 바람에 후학들이 없어 그의 학술 업적이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한 탓도 크다.

월봉서원의 기지개는 이제부터가 진짜다. 모두 300여억 원의 예산이 투입될 고봉유적지 조성사업은 철학자의 길이 본격 개통되면 순례자들의 방문이 잇따를 것으로 기대된다.

강씨는 “2015년 하계U대회 때 광주를 방문하는 외국 대학생들에게 한국의 전통대학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월봉서원이 그 원형을 보여주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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