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옛길 찾는 재미, 최고죠”
“잊혀진 옛길 찾는 재미, 최고죠”
  • 김경대 기자
  • 승인 2010.10.06 1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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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척산행의 대부’ 광주 남구 월산동 백계남씨

▲ 백계남씨는 70이 넘은 노구에도 하루 열두 시간 산행을 거뜬히 해낸다고 한다. 요즘도 한 달에 6~7회쯤 산을 찾는다는 백씨는 후배 산악인들에게 ‘멘토’와 같은 존재다.
바야흐로 가을이다. 말이 살찌고 곡식과 열매가 익어가는 가을은 더불어 독서의 계절이기도 하며 산행하기 ‘딱 좋은’ 계절이기도 하다.

이번 주 ‘동네방네 사람들’의 주인공은 가을산행 철을 맞아 원로 산악인 광주 남구 월산동의 백계남씨를 청해 만나봤다.   

광주 뿐 아니라 전국에서도 꽤 이름난 ‘산 도사’인 백씨는 등산의 매력에 대해 “자연을 벗 삼아 자신을 되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인 동시에 맑은 공기를 마시며 건강도 챙길 수 있는 최고의 운동”이라고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였다.

그런 백씨도 “내가 왜 이제야 산의 매력을 알았을까” 한탄하며 운명처럼 산과 사랑에 빠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쯤이다.  예외 없이 불어 닥친 IMF의 파고를 끝내 타고 넘지 못했던 백씨는 상처 입은 마음을 달래려 난생처음 백두대간 종주에 매달렸다.

남들은 보통 배낭을 한 가득 채우고 60~70일 간을 쉬지 않고 내리 주파하는 방식을 택했지만 그는 구간 구간을 이어가며 3년에 걸쳐서 국토의 등줄기를 꼼꼼히 더듬었다.

“백두대간을 종주했다는 사람들을 만나서 물어보면 앞만 보고 걷느라 어디가 어디인지 아는 사람이 없어요. 그런 바보 같은 산행이 어디 있습니까. 천천히 걸으면서 내가 걷는 구간의 지형을 살피고 산맥과 지맥의 의미를 되짚어봐야지요.” 

이때의 경험은 훗날 그를 ‘개척 산행의 대부’로 부르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남들 뒤꽁무니나 쫓아 유명산을 오르는 산행은 적성에 맞지 않더라고요. 큰 산맥에서 뻗어 나오는 지맥을 따라 잊혀진 옛길을 찾는 재미, 그거 안 해 본 사람은 절대 모릅니다.”

최근 광주시가 나서 새 단장을 마친 무등산 옛길도 백씨와 같은 선등자들이 90년대 후반부터 옛 산길을 더듬은 결과다. 무등산 중머리재에서 화순 너릿재를 거쳐 진월지구 분적산까지 무등산 대종주길을 처음 개척한 것도 그다.

“98년도에 너릿재에서 보니 어렴풋이 산줄기가 보이더라구요. 저승재를 거쳐 390고지인 소령봉에 오르면 오른쪽으론 내지마을, 왼쪽으로 화순 용계저수지로 빠지는데 오른쪽으로 가면 칠구재, 분적산을 지나 도곡온천에 닿고 왼쪽으로 가면 남재로 해서 화순온천으로 떨어지는 종쾌산에 닿게 되죠.”

과거에는 이름만 있을 뿐 등산객들이 전혀 찾지 않던 산들이 백씨의 개척산행 이후 비로소 명산의 지위를 얻은 곳도 많다. 전날도 모 산악회의 요청으로 안내산행을 했다는 논산 향적산을 비롯해 고흥 운암산, 순천 앵무산, 영암 월각산, 보성 천봉산, 여수 봉황산, 통영 불암산 등 그의 발길이 닿은 이후 비로소 ‘산’이 된 곳은 셀 수 없을 정도다.

▲ 백씨가 개척산행 중에 매달아 놓은 리본.
백씨의 이정표는 산악인들에게 적재적소에 정확한 정보로 인기가 높다. 갈림길에서 매직으로 산행정보를 갈겨쓴 뒤 친절히 휴대폰 번호까지 적어놓은 그의 리본은 처녀 등산에 나선 후등자들에겐 ‘보증수표’와 같다.

“리본은 몇 번씩 답사를 거쳐 확실하다는 믿음이 들면 매달죠. 이곳저곳 함부로 달지 않아요. 필요하겠다 싶은 곳에 정상 몇km 이런 식으로 써놓으니까 산꾼들이 많이 좋아하는 것 같아요.”

70이 넘은 노구에도 한 달에 6~7회쯤 산에 오른다는 백씨는 자신이 개척한 코스를 재 답사하며 필요한 곳에 로프를 설치하고 리본을 다시 고쳐 매느라 요즘도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한번은 지리산 매봉에서 야간산행을 하던 이가 산중에서 길을 잃고 밤 11시쯤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하더군요. 새벽 3시까지 길안내를 하느라 밤을 꼬박 새웠어요. 무사히 산을 내려온 뒤 그 사람이 묻더군요. 혹시 지도를 펼쳐놓고 길을 가르쳐 주었냐고요. 그래서 내가 그랬죠. 자다가 깨서 지도 찾을 정신이 어디 있었겠느냐고요. 그랬더니 두 손 두발 다 들었다고 놀래더군요.”

산 정보에 관한 한 그의 기억력은 독보적이었다. 봉우리와 고개의 이름, 산의 높이, 다음 연봉까지의 거리까지 가히 ‘걸어 다니는 산 사전’이라 부를 만 했다.

“한 달에 대략 20여 통쯤 길을 묻는 전화를 받는 것 같습니다. 안내산행을 해달라는 산악회의 전화도 심심찮습니다. 요즘은 젊은 산악인들하고 자주 어울려요. 새로 배우는 것도 많고 덩달아 젊어지는 것 같아 기분도 좋고요.”

백씨는 포털사이트 다음에 ‘백계남의 전국산줄기’라는 카페를 직접 운영한다. 그가 개척한 산들의 산행정보를 사진과 함께 빼곡히 기록해놓았다.

“주변에서 책을 내보라는 권유도 많이 하지만 책은 아무나 쓰나요. 죽을 때까지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사람은 분수에 맞게 살아야합니다. 인터넷카페만 해도 즐겁고 재밌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을산행객들에게 들려줄 당부 말이 있느냐고 여쭸다. “자신의 체력범위를 넘어선 산행은 자제해야 합니다. 그리고 산에 와서 쓰레기를 버린다든가 과한 음주로 분위기를 해치는 유산객(遊山客)은 되지 말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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