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 교도소에 개발과는 담 쌓았습니다”
“군대에 교도소에 개발과는 담 쌓았습니다”
  • 김경대 기자
  • 승인 2010.08.09 11: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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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삼각동 월산마을 백준호씨
삼각살이 백부자, 모르는 이 없이 유명짜
환자, 등산객들 수확기 농작물 피해 극심

 
▲ 백준호씨.
“탕, 탕~”
마침 사격훈련이 있는 날인 듯 31사단 사격장에서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소총 소리가 삼각산 골짜기를 한 바퀴 휘돌아 내리며 마을의 정적을 깨뜨렸다.

광주 북구 삼각동 월산(月山)마을은 약 200여 년 전에 조성된 전형적인 농촌마을로 큰 길 건너편으로 일곡지구가 조성된 것과 달리 논밭으로 둘러싸인 시골인 채다. 마을을 비롯한 일대는 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 원삼각마을 큰암골 일대에 향토사단인 31사단이 들어서면서 군사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있다.

“31사단이 들어서고 인근 야산이 ‘벌끈난망’이 됐었지요. 군인들이 마구잡이로 나무를 베어 화목으로 쓰는 통에 남아나질 않았어요.”

마을에서 만난 백준호(66)씨는 사단이 들어온 후 그 때부터 지금까지 마을은 별로 변한 게 없다고 했다.

월산마을은 수원 백(白)씨가 처음 자리를 잡았고 그 이후 정씨, 안씨 등이 뒤를 이었다. 마을은 다시 크게 원마을인 상월산과 하월산으로 나뉘는데 7호 남짓한 상월산에 비해 분가해 나간 하월산이 50여 호로 규모가 더 크다. 이는 우치공원으로 빠져나가는 대로변으로 집들이 대거 몰린 탓이다.

“저의 고조할아버지인 ‘삼각살이 백부자’하면 모르는 이가 없었어요. 삼각살이란 가작, 원삼각, 예촌, 상월산, 하월산마을 일대를 말하는데 일꾼을 다섯씩 데리고 살았을 정도로 큰 부자였지요.”

하지만 17, 8년 전 일곡지구가 개발되면서 논밭은 아파트로 변했고 월산마을도 일곡양지병원, 하늘마음수련원 등이 들어서면서 농지가 많이 줄었다.

“예전엔 수확한 벼며 농기구를 논밭에다 그냥 두고 다녔어요. 마을사람들끼린데 모두 믿고 살았던 거지요. 요즘엔 어림없어요. 환자들, 등산객들이 마을을 지나다니면서 수확기에 든 농작물에 손을 대는 경우가 비일비재해요. 고추, 옥수수, 깻잎, 콩이 남아나질 않아요. 오죽했으면 지난해에는 큰돈을 들여 밭에 철조망을 쳤겠어요.”

백씨는 사람 욕심에 몇 개쯤 손을 대는 거면 이해 못할 바도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하우스 안에까지 들어가 곡식에 손을 대거나 고춧대를 뽑아 몇 개 훑고 버리는 등 농민들 피땀을 몰라도 너무 몰라준다고 하소연했다.

▲ 오른쪽에 서 있는 두 그루의 소나무는 6.25때 총탄 자국이 아직도 남아있다. 월산마을 길 건너편으로 17, 8년 전에 개발된 일곡지구 아파트들이 보인다.
그런 것만 아니라면 월산마을은 거주하기에 더 없는 환경이라고 했다.

“젊어서 오치동 아파트에서 살다가 고향으로 들어왔는데 차들이며 매연에서 벗어나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공기도 좋고 마을 뒤로 삼각산을 1시간 남짓 돌면 건강에도 최고죠.”

백씨는 마을 경로당을 지나 상월산 마을을 지나는 길에 예사롭지 않아 보이는 두 그루의 소나무에 대한 사연을 소개했다.

“6.25때 이 일대까지 밀고 내려 온 북한군이 쏜 총탄을 맞고 제대로 크질 못해 저렇게 삐쩍 말랐어요. 지금도 총탄자국이 그대로 있어요. 아파트 단지로 변한 가작마을의 100여 그루 남짓한 오동나무 숲에서는 주민들을 모아놓고 총으로 무차별 쏘아 죽였다고 해요. 생목숨이 많이 죽어나갔지요. 우리 마을도 삼각산에 참호를 파고 숨었어요.”

삼각살이 백부자가 가지고 있던 농토는 어떻게 됐는지 물었다.

“제가 6살 때 살림을 지켜오던 큰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운명 직전에 지붕에서 뱀들이 마구 떨어지는 걸 봤어요. 마을 어른신들 말씀이 뱀들이 지금껏 살림을 도와줬는데 큰일 났다고 하시더군요. 대체나 그 뒤로 백부님이 하시던 운수업이 쫄딱 망하고 가세가 기울었지요.”

백씨는 집안 살림을 돕는 귀 달린 구렁이를 ‘업’이라 부르는데 짚으로 이은 지붕 속에 숨어사는 업이 사람들 눈에 띄면 그 집이 망하게 된다는 옛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월산마을은 지금 각화동에 있는 교도소가 새로 이전할 부지로 지정되면서 도시계획에 의해 도로가 새로 나게 될 모양이다.

“교도소가 언제 옮겨올지는 아직 모르구요. 문화동 외곡도로에서 31사단 뒤로 그리고 장운동 고개로 길이 뚫린다더군요. 법원에서 교도소가 멀면 안 된다고 해 가직하니 도로를 내려고 했는데 일곡 주민들이 반대해서 계획이 바뀌었다는 얘기도 있고…. 군대에 교도소에 우리 마을은 앞으로도 개발하고는 전혀 인연이 없는 모양입니다.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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