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석이의 투박한 손과 시내버스
광석이의 투박한 손과 시내버스
  • 나금주
  • 승인 2010.06.01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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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금주 (참여자치21 운영위원)

광석이를 처음 만난 것을 떠올리려면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아마도 광석이가 중학생이던 시절, 학교에서 말썽을 일으켜 사회봉사활동을 하러 복지관에 왔을 때 처음 만났을 게다.

광석이는 그때만 해도 정말 밤송이 까까머리 애 띤 얼굴에 작고 귀여운 손을 가진 보송보송한 아이였다. 그런데 사회봉사활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뭔가 2% 부족한 느낌(지적능력이 낮아 보였음)이 들었다. 부모님과 의논하여 지적장애 등록을 하고 복지관에서 지속적으로 재가복지서비스를 지원했다.

수요일에 어김없이 나타나던 광석이


세월은 흘러 광석이가 어느 덧 18세가 되어 꿈에 그리던 취업(찜질방의 세탁물을 수거하고 세탁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취업 후에도 매주 수요일이면 어김없이 복지관을 찾아왔다. 일주일에 딱 하루 쉬는 날이 수요일이었는데 딱히 할 일도 없고 해서 매주 쉬는 날이면 복지관엘 동료 한명과 함께 왔다가 점심까지 먹고 오후에 집에 가곤 했다.

그때마다 필자는 “광석이가 쉬는 날이면 정말 재미있게 할 것이 없을까? 복지관에 오지 않고 다른 더 재미있는 여가를 찾아야 할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광석이가 어느 날부터인가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왜 안 오는지 궁금해 하다가 다들 바쁘게 살다보니 나중에는 광석이의 존재 자체를 잊어버릴 정도로 행방이 묘연해졌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얼마 전에 갑자기 광석이가 복지관에 나타났다.
너무 반가워서 악수를 청하며 손을 잡게 되었는데 그 순간 광석이의 손마디가 너무나 거칠어져 마치 50대 중년 아저씨의 손처럼 투박하게 느껴졌다.

광석이에게 물었다. “정말 오랜만이다! 근데 왜 그동안 한 번도 안 온거야?”

 “복지관에 오려면 버스를 두 번 갈아타야 되는데 버스번호가 바뀌어 올수가 없었어요” 광석이의 대답에 너무나 가슴이 아파왔다.

바뀐 버스번호 때문에 혼자 속앓이

그 동안 광주시의 교통체계 개편으로 시내버스 노선이 대폭 바뀌는 바람에 광석이가 그 변화에 혼자 적응하기 힘들어 했을 모습이 떠올랐다. 우연찮게 집에서 복지관으로 오는 버스 타는 방법을 알게 되면서 쉬는 날이면 가끔씩 찾아온다. 광석이는 요즘도 일주일에 한 번씩 쉬는 날이 와도 딱히 갈 곳도 없다.

심지어 어떤 날은 쉬는 날에 갈 곳이 없어서 그냥 회사에 출근해 어슬렁거리면서 일 좀 거들어주다가 집에 온다고 한다. 광석이는 매달 100만원  이상 벌어서 거의 한 푼도 쓰지 않고 고스란히 저축한다고 하는데 여전히 돈이 아까워 모으기만 한다.

10여년 이상을 회사에서 잘리지 않고 용케도 잘 다니고 있기는 하지만 문제는 도무지 모으기만 할 줄 알지 제대로 쓸 줄은 모른다는 거다.

열심히 일해서 모으는 것도 좋지만 이제는 조금씩 여가를 즐기면서 쓸 줄도 알아야 하는데 여전히 한번 들어간 돈은 나올 줄 모른다. 그러는 사이 광석이는 벌써 스물 여섯이 되었다. 이제 어엿한 어른이 되었고 장가도 가야 한다.

나이에 맞지 않게 거칠고 투박해진 손마디를 보듬어주고 챙겨줄 수 있는 좋은 여자 만나 어서 결혼도 해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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