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 5월 ‘서럽게 울다’
서른 살 5월 ‘서럽게 울다’
  • 정영대 기자
  • 승인 2010.05.23 19: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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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규명·명예회복 뒷전…교육 무관심
‘님을 위한 행진곡’ 퇴출 등 정부 홀대

▲ 광주민중항쟁 서른살을 맞은 18일 5·18 묘역에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한 세대가 지나도록 진상규명은커녕 명예회복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가운데 참배객들이 5월 영령 묘소 앞에서 헌화참배하고 있다.
서른 살의 5월이 서럽게 울었다.

한 세대가 지나도록 진상규명은커녕 명예회복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못해서다. 5·18과 북한을 연계 짓는 ‘못된 짓거리’ 때문이다. 인터넷 특정 카페에 관련 글이 게시되면 ‘펌 질’을 통해 유통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5·18을 악의적으로 왜곡하고 선동하는 글들 대부분이 통일부 자료를 원재료로 삼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정부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미네르바’를 구속하고 ‘연아 회피 동영상’을 고발하고 ‘천안함 관련 글’을 쓴 네티즌을 고소한 것이 이 정부다. 국가가 공식 지정한 기념일을 왜곡하고 비방한 것이 그렇게 사소한 문제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국가 정통성과 정체성에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국민참여당 정찬용 광주시장 후보는 “이명박 대통령은 정부 측 자료작성과 유출경위 등 사건의 진상을 국민 앞에 공개하고 5·18의 진실과 역사가 부인되는 일체의 행위를 중지시켜야 한다”고 요구했다.

뿐만 아니다. 광주학살자들이 버젓이 사회지도층 행세를 하며 여전히 잘 나가고 있는 것도 우울한 5·18의 한 단면이다. 29만원 밖에 없다던 전두환은 지난 1월 서울 강남의 한 웨딩홀에서 성대한 팔순잔치를 했다. 연희동 자택은 여전히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정호용은 현재 육사발전기금 이사장을 맡고 있고 장세동은 200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는 코미디를 연출하기도 했다.

게다가 정부의 무관심과 외면으로 5·18 교육은 거의 진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고교 국사와 근현대사 교과서에 5·18이 수록돼 있는데 근현대사는 선택과목으로 분류됐다. 학생들이 5·18에 대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것은 고교 국사교과서에 수록된 다섯줄이 전부인 셈이다. 

5·18을 알리기 위한 다양한 체험학습과 계기교육이 실시되고 있지만 그마저도 광주 안에 갇힌 상태다.
명색 국가기념일이지만 전국적으로 추모행사를 하는 자치단체는 손에 꼽을 정도다. 그나마도 형식적인 요식행위에 머물고 있다.

올해 서울광장에서 열린 ‘5·18민중항쟁 30주년 서울행사 기념식’이 대표적인 사례다. 서울시가 5·18 기념행사를 허가하고도 추모와 분향을 금지한 것이다. 더군다나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는 5·18 기념행사장에 조화 대신 축하화환을 보냈다.

‘노자 좋구나 오초동남 너른 물에 오고가는 상고선은 순풍에 돛을 달고 북을 두리둥실 울리면서….’

하마터면 5·18 30주년 기념행사장에 ‘방아타령’이 울려 퍼질 뻔했다. 정신 나간 국가보훈처가 총리 입장 곡으로 ‘방아타령’을 연주하려 했다는 것이다. 이만하면 정부와 여당의 5·18에 대한 ‘적의’와 ‘속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셈이다.

뭐니 뭐니 해도 이명박 정부의 ‘5·18 지우기’ 압권은 30주년 본 행사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퇴출시킨 것이다. 아무리 정부가 주관하는 행사라지만 엄연히 상주가 있는데 제사상에 ‘감 놔라 배 놔라’한 무뢰한이 따로 없었다. 특히 ‘님을 위한 행진곡’이 갖고 있는 상징성을 감안한다면 이는 ‘제2의 학살’이나 다름없다.

또 응당 국가기념일에 참석해야 할 대통령은 2년 째 코빼기도 내비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총리를 시켜 대신 읽게 한 기념사에서 ‘거리의 정치’ 운운하며 광주시민과 유가족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유족들은 기념식장 밖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정부의 5·18 조롱과 멸시에 오열했다. 정치권의 비난도 빗발쳤다.

민주당 강운태 후보는 “정부가 5월의 노래로 국민에게 널리 알려진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 못하게 한 것은 과거 독재정권으로 회귀”라고 비판했다.

민주노동당 장원섭 후보는 “오월의 혼이 담겨 있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를 수 없다면 광주는 더 이상 광주가 아니다”며 “저항과 연대라는 5·18 정신을 꺾고 역사를 거꾸로 되돌리려는 시도를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진보신당 윤난실 후보는  “만약 5·18항쟁이 없었다면 CEO 이명박은 군부에게 조인트를 까이는 신세가 됐을 지도 모를 일”이라며 “이명박 대통령이 ‘색깔’을 뒤집어쓰고 5·18을 바라본다면 국민통합의 임무를 띤 대통령이 할 일이 아니다”고 일침을 놨다.

그리고 나이 서른의 5월 광주에 하염없이 비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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