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시끄럽게 살다 죽었으면 해”
“덜 시끄럽게 살다 죽었으면 해”
  • 김경대 기자
  • 승인 2010.05.19 10: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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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북구 생룡동 지내마을 범성균씨

우치공원, 생계에는 도움 소음 피해는 재앙
차라리 마을 수용해 주민들 이주시켜줬으면

▲ 범성균씨.
우치공원에서 운영하는 오리배가 한가로이 노니는 호수의 이름은 대야제(大野堤)다. 대야제는 너른 생룡 들의 갈증을 채워주는 제법 큰 저수지다. 광주 북구 생룡동, 전남 담양군 대전면 주민들은 대야제에서 흘러나온 물로 농사를 짓고 그 곡식으로 끼니를 해결한다.

대야제는 또 외래어종인 ‘배스’ 포인트로도 유명해 루어낚시꾼들이 많이 찾는 낚시터다. 그야말로 ‘아낌없이 주는 저수지’다.         

광주 북구 생룡동 지내마을(池內)은 대야제 안쪽에 있는 못안마을이라 해서 그리 불렸다. 마을은 큰 길에서는 보이질 않는다. 우치공원 동물원을 가는 산책로에서 건너편으로 모습을 보이면 그제야 이런 곳에도 마을이 있었나 할 정도로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마을은 ‘용문사’라는 절을 지나 구비 구비 한참을 더 돌아 들어간다. 너른 저수지를 끼고 닿은 탓인지 오래 찾지 않은 섬에라도 온 듯한 기분이다.

400~500여 년 전에 들어섰다는 마을은 지형이 넓지 않아 한창 때도 30여 호 남짓, 지금은 20여 호 60여명의 주민들이 모여살고 있다. 새로 지어진 듯한 경로당 입구에는 50년 수령의 느티나무가 대야제를 굽어보고 있다. 마을은 뒤로는 대숲이 넓게 펼쳐져 있고 앞으로는 저수지가 빙 두르고 있는 그림 같은 풍경을 자랑한다.   

논을 둘러보려 자전거를 타고 나서던 범성균(65)씨를 붙잡고 마을의 내력을 물었다.

“노인들뿐이야. 내가 젊은 축에 들어가니 말 다했지. 자랑할 만한 것도 없고…. 아, 예전에 광주시장 하셨던 범택균씨가 이 동네서 살았어.”

마을에서 제일 젊은 분이 올해 예순하나라는 통장, 최고령은 아흔여섯 할머니, 대부분은 일흔 줄을 넘어섰다.

▲ 마을은 너른 생룡 들의 갈증을 채워주는 대야제를 지나 꽤 깊숙이 들어가야 모습을 드러낸다. 20여 호 남짓한 마을은 우치공원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에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다.
평화롭던 지내마을은 1991년 호남 최대의 종합위락시설 우치공원이 들어서면서 반쪽이 났다. 놀이공원에서 흘러나오는 커다란 음악소리는 광주공항 주변의 전투기 소음과 맞먹는다.

공원이 들어서고 주민들 반응은 어땠느냐고 물었다.
“반반이지. 공원에서 일거리를 얻어 돈 좀 벌어 쓴께 그런 건 좀 낫다고 하고, 음악소리가 원체 시끄러워 왼 종일 신경이 곤두서니 못살겠다고 하고…”

우치공원이 들어설 때 주민들은 반대 의견이 더 많았다. 우치공원이 들어서기 전 애초에는 전문대가 들어설 계획이었다. 지금도 위락공원보다는 교육시설인 대학교가 훨씬 나았지 싶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고 한적하던 시골마을에 한해 100만 명이 넘는 행락객이 몰려들 줄 누가 알았겠는가.

“민간업자가 아파트를 개발했다면 주민들이 돈을 좀 만졌겠지. 하지만 광주시에서 추진하는 일이라 공시지가로 논밭이 수용됐어. 주차장 저쪽에다 주민들을 위해 아파트를 짓는다는 말도 있었어. 공짜로 줘도 시원찮을 판에 상당한 값에 입주해야 했어. 누가 들어가려고 하나. 그러다 말았지.”

마을과 우치공원의 경계는 녹슨 철조망이 흉물스럽게 가로막고 있다. 첨단을 달리는 위락시설과 시간이 멈춘 듯한 농촌마을의 불안한 동거의 끝은 어떻게 될까. 범씨에게 마을의 미래를 물었다.

“내년 6월이면 금호하고 우치공원하고 임대기간이 끝난다고 하더구먼. 또 연장이 되겄제만 주민들 소망은 차라리 마을이 수용이나 돼서 덜 시끄럽게 살다가 죽었으믄 하는 거여.”

가족과 연인들의 나들이 분위기를 띄우는 경쾌한 음악소리가 이들에겐 소음 없는 세상에 살았으면 할 만큼 원망의 대상이었음을 도시민들은 한번이나 헤아려 봤을까. ‘주변을 둘러보고 살라’는 부처님 말씀이 생각나는 5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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