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울려 퍼진 ‘임을 위한 행진곡’
끝없이 울려 퍼진 ‘임을 위한 행진곡’
  • 김경대 기자
  • 승인 2010.05.18 17: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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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노래 배제 방침에 30주년 기념식 파행
광주 정치권, 제야·시민들 구묘역서 자체행사

올해로 30주년을 맞는 5·18광주민중항쟁 기념식이 공식식순에서 ‘광주의 애국가’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이 제외되는 등 정부의 납득 불가한 대응으로 결국 반쪽 행사로 치러졌다.

장대비가 내리는 가운데 18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는 국가보훈처가 주관하는 신 묘역 기념식과 광주 지역 제야사회단체에서 자체 주관한 구 묘역 행사가 따로 열렸다.

5·18 관련 단체 회원 100여명은 신 묘역 기념식 도중 ‘임을 위한 행진곡’을 기습적으로 불렀고 이를 제지하려는 경찰과의 사이에 숨바꼭질이 이어졌다. 구 묘역에서는 제야 인사와 광주 권 정치인 등 300여 명이 참석해 비장한 분위기 속에 정부여당을 강하게 성토했다.     

틀어막아도 목이 쉬도록 ‘사랑도 명예도…’

기념식 예정시간인 오전 10시가 다가오자 신 묘역에는 정운찬 국무총리 등 여야 정치인들이 속속 도착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놓고 30주년기념행사위원회 등과 날선 공방이 있었던 터라 행사의 파행은 이미 예고됐던 바, 묘역 주변으로는 이날 44개 중대 3천여 명의 경찰 병력들이 일찍부터 진을 치고 만일의 소동을 대비했다.

국가보훈처는 예년과 달리 5·18 기념식 공식행사 내용 중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과 5·18 유가족 대표의 ‘5·18민주화운동 경과보고’ 순서를 아예 빼버려 정부가 5.18광주민중항쟁의 의미를 애써 폄훼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난을 샀다.

▲ 5.18유가족들은 5.18기념식장에 입장하지 않고 광주 5.18국립묘지 '민주의 문'에 모여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기 시작했다. 유가족들의 노래가 시작되자 행사장 안에 있던 5.18부상자 등 유공자들도 밖으로 나와 "군사독재때도 부르던 노래를 이명박이가 못부르게 한다"고 성토했다. ⓒ오마이뉴스 이주빈 기자
일찌감치 ‘민주의 문’ 앞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합창하며 모여 있던 5·18 관련 단체 회원 100여명은 정운찬 국무총리가 대통령 기념사를 대독하던 오전 10시 10분쯤 일제히 기념식장으로 뛰어들어 이날의 사태에 온 몸으로 저항했다.

이 과정에서 이들 회원들의 비표를 확인하려는 경찰들과 “내가 주인인데 왜 검사를 맡고 들어가야 하느냐”는 유가족들 사이에 심한 몸싸움이 벌어졌고 검색대가 부서지는 소동이 일어났다. 

이들 회원들은 기념식이 계속되는 내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항의의 뜻을 표했고 경찰에 쫓겨 흩어지면 삼삼오오 짝을 지어 구호를 외치는 등 소란을 멈추지 않았다.

구 묘역에서는 오전 10시 극단 ‘얼쑤’의 식전공연이 있은 후 정동년 30주년행사위원회 위원장,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 김재균·강기정 국회의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자체 기념식이 거행됐다.

▲ 광주지역 국회의원, 광주시장 후보 등 정치권 인사들과 제야, 시민 등 300여 명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공식행사에서 부르지 못하게 한 정부의 처사에 항의하며 구 묘역에서 자체 기념행사를 가졌다. 참석자들은 목청껏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정부여당을 강하게 성토했다.
정동년 행사위 위원장은 “당신들의 영혼을 달래주던 ‘임을 위한 행진곡’이 당신의 묘소에서 쫓겨나 이곳에서 불러야 함을 머리 꿇고 사죄 드린다”면서 “그러나 차라리 무릎 꿇고 사느니 서서 죽게 할 용기를 달라”며 정부의 처사에 강하게 항의했다.

오종렬 상임고문은 “정부가 천안함 사건 뿐 아니라 5·18민중항쟁도 침몰 작전을 시작했다”며 “5·18은 계승하는 오월, 통일로 가는 오월인 만큼 정부의 민주주의 탄압에 맞서 결연히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는 “대통령 농사 한 번 잘못 짓는 바람에 국민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며 “이번 6·2지방선거에서 MB정부와 한나라당을 꼭 심판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광주 민주당 의원들 단체지각에 ‘눈총’

한편 이날 구 묘역에서 열린 기념식에 15분 쯤 늦게 도착한 광주 지역 민주당 의원들은 자리배정과 단상소개 문제로 고성이 오가며 ‘찬밥’ 대접을 받았다.

박주선 민주당 최고위원, 강운태 광주시장 후보, 김동철 시당위원장, 조영택, 김영진, 이용섭, 유선호 의원 등은 식이 시작된 지 15분쯤 늦게 도착했다.

▲ 뒤늦게 도착한 광주지역 국회의원들 때문에 구 묘역 자체 기념행사가 잠시 중단되자 일부 참석자들이 야유를 보내는 등 소동이 일었다.
보좌관들과 당 관계자들이 객석 앞자리에 자리를 마련하는 통에 분위기가 어수선해지자 객석 일부 참배객들은 “여기는 정치하는 곳이 아니다. 늦게 왔으면 뒤쪽으로 가라”고 항의하며 면박을 줬다. 또 군중 속에서는 “정세균 대표가 오지 않았으니 민주당은 안 온 것이나 마찬가지다”는 고함도 터져 나왔다. 

또 행사 사회자가 주요 내·외빈의 이름을 소개하면서 “민주당 여러 의원님들 오셨습니다”하고 의도적으로 배제하자 일찍부터 참석해있던 강기정 의원이 “정도가 심하지 않느냐”며 단상으로 뛰쳐나가 강하게 항의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그러자 사회자가 다시 “그러면 저는 의원님들 이름을 모르니 명단을 적어서 주면 읽어드리겠다”고 받아쳤고 결국 이윤정 남구 지역위원장이 명단을 적어 건네는 해프닝이 있었다.

인사말을 위해 연단에 오른 박주선 의원은 “민주당의 정체성과 정통성이 이곳에 있다고 믿어 지역 의원들이 모두 참석했다”며 “5·18 30주년이 지났건만 역사를 이해하지 못하고 손상하려는 정부의 태도가 부끄럽다”고 말했다.

행사 말미에 다시 사회자는 “올해 뿐 아니라 내년에도 이곳에서 행사를 가져야 할 것 같은 예감에 감정이 복받쳤다”며 “좀 전의 결례를 양해 바란다”고 말해 소동이 일단락됐다.

광주지역 정치인들과 참석자들은 행사 말미에 오른팔을 높이 휘두르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내쳐 ‘광주 출정가’를 연달아 부르며 이날의 비통함을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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