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조직하는 그대
희망을 조직하는 그대
  • 강위원
  • 승인 2010.03.19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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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위원 여민동락공동체 대표

때가 때인지라 얼마 전까지 출판기념회 다니느라 혼쭐났다. 저마다 어깨띠 매고 명함 돌리고 있는데, 아는 사람이 한두 명 출마했어야 감당이 가능하지 사람구실 하고 살기 참 팍팍했다.

결혼식 축의금이나 장례식 부조금이야 세상사 보편이 됐다하나, 출판기념회 책 사러 다니는 건 돈쓰고 품 팔고 보통 곤욕이 아니었다. 책 제목도 모르고 시간 내서 먼 길 찾아가야지, 책 하나 사는데(?) 낯선 곳에서 두어 시간 앉아 있어야지, 그렇다고 책값도 대충 낼 수 없는 노릇이라 여러모로 불편한 자리들이었다. 적어도 나같이 일 중독자이자 가난뱅이에겐 더욱 그랬다.

하지만 어쩌랴. 누구말대로 출마하신 분들에게 선거는, 저마다 모든 인생을 걸고 벌이는 전투다. 어쩌면 알고 지내온 분들 격려해 드리는 건 마땅한 도리이기도 하고, 내 처지에 출판기념회 가는 것 말고 딱히 할 수 있는 깜냥도 없는 것을.

상상력 폄하하는 현실정치에 씁쓸

정작, 문제는 따로 있다. 내가 견딜 수 없는 건 ‘정치의 정치다움’에 대한 끝없는 입장차이다. 특히 광주 판 선거 얘기를 나눌 때마다 내 맘이 옹색해지고 상처받는 건, 뭔지 모를 공허함과 외로움 탓이 크다. 정치를 좀 안다 하는 양반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어김없이 난 구닥다리 이상주의자가 되곤 한다. 그들이 복잡한 정치공학을 열거하고 날카롭게 계산기를 두드리며 빼어난 정보를 과시할 땐 정말이지 선수급이다. 그들 앞에 나는, 정치의 정치다움을 잘 모르고 있는 철지난 몽상가에 불과하다.

그렇다. 그들의 정치철학이나 소신은 현실 정치공학 앞에 철저하게 무력하다. 과거 한 때 언필칭 혁명을 얘기하던 분들조차 더 이상 꿈꾸고 상상하려 하지 않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며 희망을 조직하는 일은, 이제 관심 밖의 영역이 됐다. 그러면서 대세로의 편승을 현실주의적 타협과 단계적 진화라고 왜곡한다. 왜곡을 넘어 점차 모든 이상주의적 상상력을 순진한 아마추어리즘으로 폄하하기조차 한다.

그토록 시민사회운동을 하며 특정정당의 정치시장 독점이 가진 기형구조를 혁파해야 한다던 이들조차 별다른 과정설명 없이 기성의 권위에 숟가락을 내밀고 있는 형국이다. 모두 다 내가 들어가 바꾸겠다며, 이미 오래 전에 유통기한을 넘긴 맛없는 얘기를 반복하는 것도 우습다.

차라리 권력은 갖고 싶고, 대중과의 소통은 중단한 채 자기 신념만 갑옷마냥 입고 있는 자기분열적 진보정당은 가망이 없어 보이고, 그래서 결국 이것도 팔고 저것도 팔게 됐다고 하면 진정성이라도 보인다.

멀리 보고 희망을 조직하자

각설하고, 어차피 6월이면 원칙이 무엇이고 명분이 무엇인지 모를 만큼 어지러운 선거 쓰나미가 한 판 지나가게 돼 있다. 그다지 재미없는 한 판이 밋밋하게 끝나고 나면, 남는 건 침묵이다. 어쩌면 광주의 희망은 바로 그 침묵을 조직하는데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야’라고 회의하고 반문하는 이들이 희망이다. 자신을 함부로 부리지 않고 조용히 현장을 가꾸며 진보의 미래를 설계하고 있는 사람, 여기저기 끼지도 못하고 경계인으로 고뇌하며 실마리를 찾으려 애쓰는 이들이 희망이다.

이제부터 그 희망을 조직할 준비를 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실패는 그 지향가치가 열등하거나 열정이 부족한 경우보다, 그 가치를 이용하려는 기득권 세력의 손짓과, 더 빨리 이루려는 운동주체의 조급성 때문이라는 지적에 공감한다. 조급하지 않게 멀리 보고, 다시 바닥에서 세상을 바꾸기 위해 뛰고 있는 이들이 마음을 모아야 한다. 희망을 조직할 그릇을 조용히 키우면서 다시 새로운 희망의 얼굴로 만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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