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독대 그득 '우리 맛'이 곰삭는다
장독대 그득 '우리 맛'이 곰삭는다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5.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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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요맘때가 되면 자전거 하이킹 족을 만날 수 있다. 반듯하고 넓은 길이야 몇 대의 자전거가 가더라도 괜찮지만 구불구불 경사라도 진 길이면 지나는 사람들이 볼 때도 아슬아슬하다. 어쩔 때는 저게 뭔 짓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사서 고생을 해도 유분수지 차로 몇 분이면 되는 거리를 저리도 힘들게 간단 말인가. 로케트가 발사되어 우주를 탐사하고 우주여행을 떠나는 때에 거꾸로 걸으며 원시적인 방법을 찾는 '별난 사람들'이다.

걷는 행복
더 '별난 사람들'도 있다. 천리길을 걷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환경단체인 녹색연합은 해마다 '녹색순례'라는 이름으로 열흘정도 걷는다. 바로 환경파괴 현장을 몸소 걸으면서 그 아픔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차로 1시간도 안 되는 거리를 하루종일 그것도 일부러 걷는다는 것은 효율성만을 생각했을 때 정말 웃기는 일이다. 그러나! 걸으면 보인다. 길가에 핀 소박한 들꽃, 나비의 날개짓. 그리고 발바닥에 느껴지는 아스팔트의 뜨거움, 흙의 포근함. 무분별한 개발로 파헤쳐진 우리 땅의 아픔과 절규...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놓치는 것들을 걸으면 보고 느낄 수 있다. 그러면서 그 곳을 진정 알고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프랑스 생물학자인 이브 파칼레는 그리도 걷는 것을 예찬했을까.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두발로 간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효율성을 숭배하고 결과와 잇속만이 횡행하는 이 사회에 비폭력적으로 저항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결과만으로 평가하지 않고 그 과정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보여지는 것으로만 판단하지 않고 직접 느끼고 교감하는, 느리지만 진실한 것을 원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느리게 산다는 것
'마당에 즐비하게 늘어져있는 장독들 ⓒ사진 양희연 기자
그러나 현대문명은 빠름을 추구한다. 기업이 목청껏 외치는 디지털 세상. 소리도 빨리 통해야 하고, 길도 뻥뻥 뚫려 빨리 도착해야 한다.
이 속도숭배는 먹는 것에까지 이어진다. 햄버거가 포커에 빠진 어느 귀족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던가. 첨단문명을 접할수록 사람들은 더 바빠진다. 해야할 일이 많아지는 것이다.
걷는 즐거움 뿐 아니라 먹는 즐거움도 잊어버렸다. 빨리 배를 채우고 일을 해야한다.

맛에 대한 감각도 그렇다. 쌈빡하고 자극적인 것에 길들여져 곰삭은 맛에서 나오는 텁텁함과 구수함은 고리타분한 것이 되었다. 보는 것으로도 맛을 안다고 형형색색으로 모양을 낸 음식 사이에서 무채색 먹거리는 눈에 띄지도 않는다.

천천히 만들어져 깊은 맛이 나는 우리 음식
밥과 김치, 된장국이 있어야 할 자리에 빵과 햄, 콜라가 자리잡아버렸다. 방부제와 발색제, 향료로 범벅이 된 음식들은 육체적 병과 더불어 나약한 정신을 안겨주었다. 빨리 살다가 빨리 세상을 떠나는 것은 요행을 바라는 한탕주의와도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닐까. 느긋하게 기다릴 줄 알고 관망하면서 순리에 따라 억지부리지 않고 살아가는 것. 몸의 건강 뿐 아니라 정신의 건강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일 것이다.

메주 된장 고추장 메주가루 참기름 전통제조방식 그대로
묵히고 발효시켜 깊은 맛 우러내는
그렇게 천천히, 느리게 세상을 살아보자. 오래된 우리 음식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묵히고 발효시켜 깊은 맛이 나는 우리의 전통음식. 그것은 그렇게 살아왔던 우리 선조의 모습을 그대로 빼다 박았다. 이제는 5대 영양소니 단백질 최고니 하는 서구식 이해관계로 만들어진 영양론에서 벗어나 우리체질에 맞는 우리음식을 찾아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우리 음식의 기본재료인 된장, 고추장, 간장... 이는 만드는 과정이 복잡하고 걸리는 시간도 많아 웬만한 정성으로는 도시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직접 만들어 먹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다. 믿을 수 있는 누군가가 이 일을 대신한다면 어떨까. 누군가는 생산을 잘 하고, 또 누군가는 잘 소비하는 것. 건강한 도농직거래는 현재의 사회구도 안에서 상부상조하여 상생할 수 있는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할 것이다.

'햇된장을 출하하기위해 용기에 담고있는 주경선교무' ⓒ사진 양희연 기자
오염된 세상속 '전통맛' 간직
전북 임실에 자리잡은 영산식품. 이곳은 원불교교단에서 직접 운영하면서 전통음식을 보급하는 일을 하고 있다. 12년전 관산에 터를 잡았던 영산식품은 2년 전에 임실로 자리를 옮겼다. 폐교를 인수해 메주를 띄우는 황토방을 만들고 대량생산을 할 수 있는 설비를 갖추었다. 이곳을 찾으면 가장 먼저 마당에 가득 늘어져있는 장독들이 눈에 들어온다. 100개는 족히 넘어 보이는 장독들마다 언제 어떻게 했다는 것을 알리는 딱지가 붙어있다.

이곳에서 1년에 소비하는 콩은 8톤. 이 재료는 모두 임실에서 믿을 만한 사람에게서 구한다. 사람을 보고 물건을 사는 것이 가장 믿을 수 있다는 경험이 있기 때문이란다. 해마다 10월이면 메주를 만들기 시작한다. 이 메주를 황토방에 띄우고 난 후 2월에는 장을 담근다. 40-50일간 항아리에서 숙성된 메주는 장과 가르고서 100일 넘게 숙성시키고, 장은 항아리에서 1년 동안 묵힌 후 장작불로 가마솥에 다린다. 된장이 만들어지기까지 6개월, 간장은 1년 6개월 이상이 소요되는 셈이다.

원불교 교단서 운영... 1년 콩 8톤 소비
이렇게 믿을 수 있는 재료를 이용해 전통방식 그대로 만든 메주, 된장, 고추장, 메주가루, 간장, 참기름, 들기름 등 우리의 기본 양념과, 검은 약콩을 식초에 불렸다가 다시 말려 빻은 '식초콩 가루차'가 이곳의 주 생산품목이다. 오염된 세상의 안식처 같은 곳이다.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우리 미래를 준비하자.

천천히 만들어져 깊은 맛을 내는 우리 전통 음식. 빠름과 효율성만을 생각하는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며 지속가능한 미래를 생각할 때 분명 한번쯤 생각해보는 것이 먹거리일 것이다. 건강한 먹거리는 건강한 몸을 낳고, 건강한 몸을 건강한 정신을 낳는다. 그 건강한 정신으로 우리의 미래를 설계한다면 밝고 희망 있는 곳이 되지 않을까.

전북 임실군 지사면 원산리 419번지
063-642-0353, 0329
영산식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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