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 순례지에서의 새해 첫날
땅끝 순례지에서의 새해 첫날
  • 채복희
  • 승인 2009.01.02 20: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채복희 시민의소리 이사

2008년 마지막 날 땅끝 해맞이 축제가 열린 해남 송지면 송호리에는 흰눈 섞인 매운 바람이 몰아쳐 저문 한해를 보내는 아쉬움을 더한 듯 했다. 눈도 그다지 많이 내리지 않고 한해 영하로 내려가는 날이 불과 며칠밖에 되지 않는 땅끝마을이건만, 신년맞이를 하는 근래 몇 해째 여지없이 맹추위가 몰아치고 있는 모습이다.

이런저런 축제 프로그램을 마련해 놓고 차질 없이 준비해온 군청 직원들과 해당 업무 종사자들이 마음을 크게 졸였으리라는 것은 보지 않고도 뻔하다.

해맞이 축제에 나선 사람들
  
전국 여기저기서 다투어 열리는 새해 해맞이 축제가 생겨난 지는 오래지 않다. 가는 해를 아쉬워하는 한편 새해에는 보다 좋은 일이 일어나고 행복한 삶이 전개되도록 기원하는 게 나쁠 리 없다.

전해지는 뉴스에 따르면 올 첫날에는 수도권에 사는 이들이 동쪽으로 몰려가 무려 100만여명이 동해안 여기저기를 찾았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해가 돋아난다는 울산 간절곶만 해도 10여만명 이상이 찾아와 새해를 맞이했다는 소식이다.
  
해는 동쪽에서 뜨므로, 서해에서는 해맞이 행사를 갖는 곳이 없다. 남해를 보고 있는 해남 땅끝에서는 국토의 마지막이라는 상징성과 더불어 동쪽에서 뜨는 해를 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해맞이 축제를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올해는 2만여명이 다녀간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바람이 심하게 불어 체감온도가 크게 떨어진 탓에 실제 축제를 즐긴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을 성 싶다.
  
이런저런 축제에는 사람들이 찾아들어야 하고 그들이 그곳에서 소비를 해주어야 현지주민들의 관광수입이 발생한다. 지방자치제들이 나서서 축제를 마련하는 이유도 군민들의 경제적 이득을 꾀하려는 의도에서다.

더불어 현지인들이 자신들의 거주지역에 대한 애정도 높이게 하는 일거양득의 효과도 볼 것이다. 이 지역에 그동안 열렸던 축제에 대한 이런저런 평가들이 나오고 있고 문화관광부에서는 성공한 축제를 선정해 지원, 경쟁력을 키워주고 있다 한다. 한번 시작된 축제나 행사를 없애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날씨 추운 것 만큼이나 암울하고 매섭게 닥쳐오고 있는 올 경제적 상황을 볼 때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새롭고 변화된 인식에 바탕을 둔 대안 모색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푸른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끝없는 흰 모래와 육지의 최남단으로 유명했던 해남군 송지면 송호리 해수욕장과 땅끝이 겪었던 지난 20여년 동안의 변화를 돌이켜보면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했던 행정의 단면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국토순례지라는 숭고한 상징성 때문에 아직도 푸른 이상을 갖고 있는 젊은이들은 여전히 땅끝을 찾아들고 있다. 대개는 방학이 있는 여름철에 순례가 많고 봄 가을에도 행렬은 간단없이 이어진다.

그러나 정작 한반도의 끝 땅끝에 이른 이들이 그곳에서 무엇을 발견하는지, 무엇이 그들을 맞이하는지 대답하기란 쉽지 않다. 아무 특색없는 작은 항구마을로 변해버린 데는 순례지로 떠오른 이후 땅끝지역에 들이닥친 난개발이 크게 한몫 했다.

난개발로 상징성이 훼손된 땅끝마을
  
좁디좁았던 바닷가 마을은 막대기 하나라도 꽂을 수만 있는 곳이라면 어김없이 횟집이 들어섰고 여기다 외지 땅투기 세력도 가세하면서 땅값은 수십 수백배로 뛰어 올랐다.

이미 원주민들은 거개 다 떠나고 비싼 땅에 지어진 비싼 건물을 임대한 외지인들은 한 푼이라도 본전을 뽑아야 했다.

그러나 땅끝을 찾는 순례자들은 대학생들이 대부분인 젊은이들로 그들의 주머니에는 많은 관광비용이 없다. 적어도 땅끝을 20여 km 정도 앞두고 걸어서 땅끝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들어오는 이들을 맞이하는 것은 언덕까지 빼곡히 채운, 칸칸을 비좁게 나눠놓은 천박한 모텔들과 질척한 도로가의 횟집 들이다.
  
바닷가를 휘감고 도는 아스팔트 이차선 도로를 따라 뚜벅뚜벅 걸어온 이들이 찾은 땅끝 순례지에는 배낭을 부리고 몸을 쉴만한 소나무 그늘이나, 냉수 한 모금을 마실 수 있는 샘, 땀을 닦아낼 수 있는 그런 장소는 한곳도 없다.

그래서 땅끝마을 관광지는 상징적 의미는 물론이거니와, 실제 그 사이로 일출이 보이는 두개의 작은 바위섬이 환상적인 푸른 바닷가 작은 항구의 아름다움을 잃어가고 있다.  이제는 정말이지 생각도 바뀌고 더불어 세상도 바뀌어야만 할 것 같다.


최신 HOT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