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 공직자들의 줄줄이 사표를 보며
고위 공직자들의 줄줄이 사표를 보며
  • 채복희
  • 승인 2008.12.19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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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복희 시민의소리 이사

저서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통해 약육강식의 세계정세에 무지하기 짝이 없었던 ‘대한민국 청년’들을 일깨워 주었던 리영희 선생은 대담 형식을 빌어 간행된 ‘대화’(2005, 한길사)에서 노년의 사상가가 가진 솔직한 감정을 토로해 낸 바 있다.

격변의 시대를 살며 한 시대를 이끌었던 지식인으로서 개인적 고충이 적지 않았겠지만, 인상에 남았던 대목 하나가 부인과 자녀들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것은 자신의 바깥 활동 때문에 사랑하는 가족을 제대로 못 보살폈으며 특히 자녀들을 고생시킨데 따른 부친으로서 죄책감이었다.

가족에게 미안했던 사회 지도자들
  
사상가 이전 한 인간으로서 사랑하는 이들을 힘들게 만든다는 것은 참으로 괴로운 일일 것이다. 그래서 그의 고백 역시 시대가 낳은 아픔으로 다가왔고 ‘인류 잔혹사’에 의해 개인들이 겪게 되는 고충이란 누구에게나 다를 바 없다는 인식을 주었다.
  
비단 리선생 뿐만 아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독재에 저항하며 생사를 넘나들었던 시절, 돌보지 못한 가족들에 대한 애정과 미안함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에게는 정치적 부담이 될지라도 아들의 국회의원 출마를 제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5선 국회의원을 지냈던 최형우씨도 자녀 문제를 갖고 있었다. 역시 독재정권에 저항하면서 영욕을 겪었으며 가족들을 살뜰히 돌보지 못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는 정치인이다. 특히 그의 아들 중 한명은 장애가 심해 부친의 마음을 몹시 아프게 하고 가족에게 미안해했다고 한다.
  
대체로 혁명가로서 생애를 살아온 인물들을 보면 평안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지 못한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결코 그의 탓이 아니었음에도 그의 가족들의 불행은 이후 변화한 시대가 책임져 주지 않았다.
  
다행 리영희 김대중 최형우 이러한 분들은 비교적 사회가 안정을 찾으며 어느 정도 보상을 받았을 것이라고 보고 그 점이 그들의 희생에 대한 일반인들의 고마움으로 환치되면 싶다. 그 이전 항일운동가와 해방 직후에서 전쟁 사이 활동한 이념가들은 그들이 흘린 피를 제대로 보상받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이는 국민들이 부끄럽게 생각할 대목이다.
  
초기 집권했을 때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겠다고 시작한 현 정권은 이후 마치 ‘복수혈전’을 펼치듯 전국을 잡도리하며 집권 1년을 넘기도록 사람을 갈아치우고 있는 모양이다.
  
계속해서 각 부처 고위직들이 집단 사표를 제출하면서 공직사회 전체를 옭아매고 있는 형국이다. 이들은 한창 일할 나이의 유능한 사람들일 수도 있고 복지부동의 관료주의에 절대로 전 무사안일의 전형일 수도 있다.
  
한 집안의 가장이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으면 그들의 가족들도 함께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그런데 국민들이 목도한 권력층의 실상은 그 직전 사회지도층들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생사를 넘나드는 고통과 달리 그들은 단지 권력을 잃었을 뿐이었다.

사회적 명분과 정의를 위해 자신의 생사와 가족의 안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저항하고 투쟁했던 이들이 정권을 쥐게 된다면 이는 당연히 주어져야할 보상으로도 여길 수 있다.

가족 우선하는 오늘의 지도자들
  
현 대통령은 알려진 바에 따르면 한 명의 아들과 두 명의 딸을 두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이었던 시절 모든 국민들, 특히 청소년들의 영웅이었던 히딩크 전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이 서울시청을 방문했는데 그 자리에 당시 십대였던 아들이 시장실에 나타나 얘깃거리가 됐었다.
  
한 개인이자 아버지로 보자면 외동아들이 그토록 매료돼 있던 영웅을 직접 만나게 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 아들은 자라서 아버지가 대통령이 되자 이제는 사돈 기업 인턴사원으로 특채되어 이백만 청년백수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됐다.
  
사회가 비교적 안정돼 있다고 평가되는 오늘날 정치권력은 대의명분이 없어도 손아귀에 쥘 수 있는 풍토로 바뀌었고 미래는 어떠한 보상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만연돼 있다. 그것은 바꿔 생각하자면 현직에 있을 때 최대한 누리고 긁어모으고 적어도 3대가 먹을 수 있는 자산을 마련해 놓자는 극도의 욕망과 이기심을 말할 수도 있다.
  
“지금은 고위 공직자들에게 국가와 국민을 위해 희생한다는 생각이 없는 것 같다. 단지 그들은 나와 내 주변만의 안위만을 위해 사는 것 같이 느껴진다”. 고위직에 있다 나온 사람에게서 들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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