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자신과 놀자, 인생과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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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민의소리
  • 승인 2008.11.15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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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훈(광주시청자미디어센터 제작지원팀장)

당신의 삶은 즐겁습니까? 하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흔쾌히 즐거워요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취학 전 아동, 학생, 직장인, 자영업자, 은퇴 후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모두 무언가 쫒기며 삶을 자기의 방식이 아닌 타인의 기준과 사회의 잣대에 맞추어 살고 있다. 그러니 삶이 즐거울 리가 있겠는가. 

먹고살기 위해서 억지로 해야만 하는 활동은 일이 아니라 노동이다. 원래 인간은 일과 놀이가 분리된 삶이 아니었다. 농경사회에서 인간은 축제와 놀이로 구성된 즐거운 사회였다.

일 자체가 즐거웠고 일을 노동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원래 사람의 신체 리듬은 노동이 아니라 놀이에 더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맞추어져 있었다. 

일과 놀이가 하나였던 삶

이렇게 삶이 즐거웠던 사회가 근대 산업사회로 들어서면서 노동력을 사고팔게 되어 자본가는 돈 주고 산 노동력을 효율적으로 운용하고자 노동과 놀이를 분리시켰다. 노동할 때 노동하고, 노동이 다 끝난 후에 노는 이분법적인 문화에 우리는 익숙해져 있었다.

우리의 삶은 그렇게 신체리듬이 아닌 외부의 환경에 의해 변화하게 되었다. 지금은 그게 당연히 여기는 시대에 살고 있다. 

본래 인간의 세상을 살아가는 리듬의 방식이 모두 파괴되고 모든 것이 사고파는 상품이 되어버린 이곳에서 아무도 나의 생존과 미래를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공포는 끝없는 노동을 강요한다. 특히 신자유주의 시대에서는 더욱 더 우리에게 살기위한 풍요로운 삶을 위해 노동을 요구한다.  

과거 어느 시대와도 비교할 수 없는 물질적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지만, 사람들의 삶은 훨씬 바쁘고 힘들어졌으며 노동은 고통스럽지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돼버렸다. 행복을 위해 무언가 끊임없이 준비하며 끝없이 연기되고, 미래에 대한 공포가 현재를 지배하고 있다.

미래에 대한 공포를 추진력으로 하는 노동은 당연히 고통스러운 의무일 수밖에 없다. 그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는 사람들은 골라먹는 디저트처럼 짧고 달콤한 놀이를 보상받는다. 그러나 그것은 남는 시간을 때워줄 뿐인 불구의 놀이들이다. 

우리가 휴일에 가족단위로 북적이는 놀이공원, 유원지, 백화점 등 을 가는 이러한 놀이들은 누군가가 미리 정해놓은 궤도를 이탈하지 않으며, 이런 놀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돈을 지불해야 한다.

일하라고 명령하던 사회는 노동하지 않을 때는 돈을 쓰라고 끊임없이 요구한다. 이것은 놀이가 아니다. 단지 노동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규칙 얽매이지 않고 놀기 

그렇다면 진정한 놀이의 조건은 무엇인가? 바로 우연에서 오는 예측 불가능성이다. 정해진 규칙에서 벗어나 예측할 수 없는 우연의 세계 속에 즐거움이 있고, 그것이 놀이의 기본이다. 그리고 삶을 논다는 것은 삶의 규칙을 바꿔내는 것이고, 규칙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규칙을 넘나들고 변신시키고,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그 삶에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사실 논다는 것도 무언가를 열심히 한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어렸을 때 골목길에서 동네 친구들과 놀 때 우리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그 자체가 즐거웠기 때문에 열심히 참여한 것이다. 

우리시대에 놀이를 즐기면서 세상의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는 무한한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삶’ 그 자체가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과 행동이 우리시대에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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