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 더 이상 오고 싶지 않았다”
“광주에 더 이상 오고 싶지 않았다”
  • 채복희
  • 승인 2008.10.10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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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복희 시민의소리 이사

인터넷에 연재해 왔던 소설 ‘개밥바라기별’이 책자로 출간된 지 두달여 만에 서점가 판매 순위 1위를 돌파했다는 소식이 들리던 날 저자 황석영씨가 전남대학교에서 특강을 가졌다. 지난 10월8일 전남대 세계한상문화사업단이 창설 6주년 기념 성과를 발표하는 자리에 초대된 황석영씨는 근작을 중심으로 자신의 문학세계를 소개했다.

광주를 사랑한 소설가 황석영
  
잘 알려져 있다시피 1943년 중국 장춘에서 태어나 해방 후 혼란기 북한을 거쳐 남한에 온 그는 경복고, 동국대 철학과를 다녔고 197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탑’과, 희곡 ‘환영의 돛’ 두 장르에 동시 당선하면서 문단에 들어선다.

그는 74년 창작집 ‘객지’를 내놓았고 그해 대하소설 ‘장길산’ 연재를 시작한다. 일간지 연재소설 장길산은 10년에 걸친 집필기간을 갖는데 1980년 광주5.18이 발발하자 광주로 내려와 광주사람들과 함께 항쟁 정신을 계승하면서 나머지를 완성해 간다. 
  
그렇게 그는 처음 광주를 알았고 정권의 총칼에 쓰러져 피투성이가 된데다 고립무원의 처지까지 이르렀던 이 도시는 객지에서 온 한 소설가로부터 많은 위로를 받게 된다. 지금은 광주가 어느 정도 명예를 회복했지만, 80년 이후 남한 땅에 살았던 사람들은 극소수의 지식인들을 빼놓고는 모두 광주를 외면했었다.

‘폭도’라고 오인했던 일반인들의 인식은 그렇다 치고 내외정세를 통해 진실에 접근할 수 있었던 알만한 지식인들조차 청맹과니 행세를 했고 그보다 덜 떨어진 나머지 떨거지들은 조장된 지역감정 속에 꽁꽁 묶여 광주를 냉대했고 멸시했다.
  
그 당시 과연 남한 땅에 지식인이라고 부를 수 있던 사람들이나 있었을까. 그 세월이 이십수년이 넘는다. 변방의 도시 광주가 겪은 아픔을 한국 현대사의 비극 속에서 냉철히 해석하고 고통을 함께 했던 지식인은 극소수였다. 그래서 소설가 황석영의 행보는 더욱 도드라진 그것이었다.
  
그는 군사독재의 서슬이 한창 날서있던 1985년 광주항쟁 르포집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를 간행한다. 이후 작가의 삶은 더더욱 거센 역사의 격류 속으로 뛰어들어만 간다. 그러한 그의 행동은 올 쇠고기 정국에서 촛불을 들었던 청소년 네티즌들을 향해 ‘개밥바라기별’를 주면서 대화를 걸듯 주체적으로 결정됐음은 물론이다.
  
1989년에는 북한 조선예술총동맹 초청으로 방북을 감행했으며 그 때문에 미국과 독일에서 유랑하다가 1993년 귀국 즉시 보안법으로 구속 수감돼 실형을 선고받고 옥살이를 하다 1998년 사면으로 석방된다.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그의 삶에는 자신이 표현한 대로 동아시아 현대사가 압축됐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광주에는 황폐한 정신만 남은 듯
  
석방 직후부터 황석영은 마치 감옥에서 작정하고 다듬어 온 양 80년 광주를 배경으로 시작하는 ‘오래된 정원’을 일간지에 연재하기 시작한다.

소설로 형상화된 광주이야기, 그것은 잔인한 역사를 살다 결국 이름 없이 죽어가는 보통 사람에 대한 사랑의 노래였다. 광주를 한결같이 연민으로 대해온 소설가는 그렇게 해서 5.18 진혼제를 다시 한 번 제대로 치러주었다.
  
작가 황석영은 근래 수 년 여간 끊임없이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면서 전 세계에 한국작가의 위상을 높이는 한편 자신의 소설 화두인 ‘공동체와 개인, 이동과 조화, 생존과 절제’를 작품 속에 담아내는데 몰입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특강에서 황석영은 광주를 오랫동안 찾지 않았으며 그것은 바쁜 일정 때문이라기보다는 사실 “더 이상 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고 고백했다. “오늘 광주는 황폐한 정신만이 남아 있는 듯하다”고 그는 덧붙여 말했고 그것은 실종된 5.18정신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때 광주만 생각하면 지금도 여전히 뜨거워진다는 작가의 가슴을 정작 광주는 지켜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지적은 혹시 광주에 대한 오해와 오판에 근거를 두고 발생했을지 몰라도, 주관적 판단이고 행동이었으니 아무도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작가 황석영의 눈에 비친 광주의 현재는 그런 모습으로 가고 있다. 진정 광주사람들이 되새겨봐야 할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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