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고 또 낮은 초록의 도시
낮고 또 낮은 초록의 도시
  • 시민의소리
  • 승인 2008.08.02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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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권행 (서울 대학교 불문학 교수)

전국 어느 지역보다 정치의식이 높은 곳이라는 평가와 달리, 도시로서의 광주는 어떤 느낌을 주는 곳일까? 정치와 역사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우리가 구체적으로 숨 쉬고 살아가는 터전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광주라는 도시를 어떻게 설계하고 만들어 가는가의 문제는 거기 몸 담고 살아가는 시민들의 집단적 의식과 지혜가 구체적으로 표현되는 일일 것이다.
 
우리 세대의 유년 시절 경향방죽과 태봉산이 메워지고 헐어지더니 광주 곳곳이 고층건물과 아파트단지로 변모하는 ‘난개발’의 역사가 지난 세월 아닌가?

불과 십여 년 전 북구 매곡동의 한 아름다운 마을이 아파트 건설업체에 밀려 변변히 맞서보지도 못한 채, 그 한가롭고 평화롭던 삶을 흔적도 없이 잃어버리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보기 좋은 소나무들이 들어서 있던 야트막한 야산은 헐리고 연꽃 피던 동네 못이 메워지면서 점령군처럼 들어서던 고층 아파트는 조폭이었다.

태풍이 밀려오던 여름 장마철이면 흙탕물이나마 장관을 이루며 흘러가면서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을 들려주는 듯 하던 동네 개천은 지금은 시멘트로 복개가 되어 그 아래 숨을 죽이고 있다.
 
광주에 대한 애정을 가진 분들에게서 더러 듣는 이야기가 있다. 나무나 공원이 눈에 띄지 않고 온통 콘크리트 건물만 들어선 듯 답답하다는 것이다. 광주천 말고는 어디 물도 없는 곳이 됐으니 더더욱 그럴 것이다.

광주역에 내려서서 바라볼 수 있었던 무등산의 시원함은 옛말이다. 그 앞을 떡하니 가로막고 선 고층건물은 하필 어떤 ‘시멘트’ 회사의 것이다. 도청 광장 쪽에 서서 보면 더더욱 안타까운 것이, 한창 재력을 키우는 통신회사의 건물이 무등산을 정면으로 가리고 있다.

여기가 어디인가? 자신을 자기 역사와 자기 삶의 주인이라고 선언할 줄 알던 그 대단한 시민들의 터전 아닌가? 사직공원은 언제인지 모르게 야금야금 건물들이 들어서서 위쪽 부분 말고는 녹지라 할 만한 곳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이미 공원의 성격을 상실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구도심과 무슨 연계도 없이 그저 뚝 떨어진 곳에 세워지는 듯한 신도심 상무지구도 똑같은 심성을 가진 콘크리트 건물들이 기세 좋게 다시 들어서고 있다는 인상을 줄 뿐이다.
 
광주의 전망(展望)은 무엇인가? 공원의 녹지와 무성한 가로수, 여기저기 도시를 촉촉하게 적셔줄 물 기운, 어디서나 시야에 들어오는 무등산과 그 늠름한 기운, 그리고 그 사이 여기저기 문화가 숨 쉬는 공간들이 들어서는 도시로 거듭 날 수는 없는 것일까?

가을이면 노란 은행잎 무수히 날리며, 시민들은 맑은 물 흐르는 산책로를 걷고 여기 저기 찻집과 의자도 있어 사람들이 담소하고 책을 읽는 도시…헐벗은 이들마저도 시와 그림, 음악을 즐기며 삶이 제법 괜찮은 도시…세상을 떠돌아보면 만들어가기에 따라 도시나 마을도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새로운 도시를 만들려는 ‘전망’이 있다면, ‘재개발’이란 높은 건물들이 마구 들어서는 것이 아니라, 낮고 낮은 건물들 사이, 초록 잎들과 물 기운이 흐르게 하는 것이라는 꿈이 있다면, 생태문화 도시의 미래가 왜 어려우랴?

가장 진취적인 도시 광주가 새롭게 태어나, 그곳에 온 누구라도 평화롭고 넉넉해지는 기억을 가지고 갈, 신시(神市)가 되기를 꿈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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