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전당, 랜드마크와 별관
문화전당, 랜드마크와 별관
  • 채복희
  • 승인 2008.08.02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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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복희 시민의소리 이사

국립 아시아문화전당이 기공식을 가진지 불과 한 달여 만에 또 한 차례 좌초위기에 직면해 있다. 기공식이 있을 무렵만 해도 이제는 순풍에 돛달고 가는가 보다 하는 분위기였다.
  
돌이켜보면 지난 4년여 동안 어려움이 많았었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듯, 규모가 큰 국책사업이라 그만큼 갈등과 험로의 연속이었고 따라서 진행 역시 더디기만 했다.

지난 정권이 선물 보따리 떠안기듯 주었던 문화중심도시 사업은 광주와 시민 주도로 시작되지 않은 만큼 무수한 논의를 낳았고, 그것들은 마치 엔트로피 에너지들처럼 방향없이 거세게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당시 문화부 수장과 초대 조성위원장을 비롯한 초기 주도자들의 철학은 분명했다. 그리고 그들의 의도와 가치관은 전당의 설계경기에 반영되었고 결과는 빛의 전당으로 청사진을 드러냈다.

전당은 마천루나 바벨탑이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엉뚱한데서 불거져 나왔다. 2년 이상의 기간이 소모된 랜드마크 논란이 그것이었다. 지상보다는 지표와 지하 공간을 더 응용해 설계된 문화의 전당에 우뚝 솟아난 개념의 랜드마크가 없다는 지적은 광주사회 일부로부터 제기됐다.

그러나 그 일부의 지적은 광주행정수장인 박광태시장의 의중과 소신이 실려 있는 것이었고, 결국 그 같은 무게 때문에 시민사회는 두 쪽으로 갈라져 갈등과 논쟁이 계속되었다.
  
산업개발을 국가발전의 모토로 삼았던 박정희정권 시절부터 우리나라는 ‘세계최대’라는 환각제를 주입해 왔다. 그것은 마치 주술처럼 식민지와 전쟁으로 피폐해진 나라를 살리는데 가짜 동력의 역할을 해주었다. 하지만 그것은 또 전근대적 시대의 산물이기도 했다.

인간보다 신이 우선인 중세에 교회건물이 웅장했던 것처럼, 봉건제후와 독재자일수록 위용을 뽐내는 축조물을 지어 인간의 미약함과 나약함을 드러내게 했던 것처럼 민주주의에 반한 개념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광주시청의 건물이나 법원과 검찰청, 전남도청 건물 등은 거대한 외모를 자랑한다. 시군단위 지방정부의 청사도 새로 지었다 하면 규모부터 늘려놓는다. 필요한 공간을 축소하라는 얘기가 아님은 물론이다.

청사 입구부터 사람을 제압하는 거대함과 웅장함 때문에 시민들은 관청에 들어서면서부터 작아지고 졸아든다. 봉건시대 포도청의 서슬퍼런 솟을대문은 저리 가라다. 건물이 풍기는 권위 때문에 정작 그 건물의 실질적 주인인 시민들은 자신의 권리를 찾아내기는커녕 절절 매며 주눅이 든다.

그래서 이른바 민주주의 시대라 일컫는 오늘날 관공서 건물들은 시민 친화적이며 녹지공간, 민원인을 위한 장소 등을 더 우선적으로 배려한다.

명분이 정당하면 대화로 못풀리 없다

하물며 인권과 평화, 민주의 도시를 응축해 공간예술로 보여주고자 한 문화전당 건물이 마천루나 바벨탑 마냥 하늘을 향해 치솟을 이유는 굳이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쪼개진 시민사회는 마치 있지도 않은 랜드마크를 전선으로 삼은 듯 서로 적이 되어 갈등의 세월을 흘러 보냈다.

그러다 쫓기듯 가까스로 이 문제는 봉합되었고, 막 걸음을 뗄 수 있으려나 했는데 이번에는 구도청 별관 보존 문제가 제기됐다. 5·18사적지 원형을 보존해 달라는 요구를 하며 5월단체가 천막농성에 돌입해 있는 것이다.

5월단체들의 주장은 별관이 도청과 분리된 건물이 아니라는 점을 근거로 하고 있고 그 사실을 기공식 직전에 비로소 알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재설계에 따르는 비용 부담과 일정 지연 등을 모른바 아니나 사적지 보존이 무엇보다 우선이라고 농성의 명분을 밝히고 있다.
  
이들이 도청 앞에 현수막을 내걸고 천막 농성을 시작한 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나고 있다. 문화중심도시 사업추진단 측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노력들을 시도하는 모습이다. 별관 보존 문제와 랜드마크 사례는 사안이 다르기 때문에 해법도 물론 다를 것이다.

그러나 랜드마크 선례에서 보였던 긴 소모전과 깊은 갈등의 골은 한번이면 됐지 더 이상 반복되지 않았으면 한다.

특히 별관보존 문제는 문화도시 기본개념에 대한 인식의 차이와 사업 주도권 줄다리기, 패거리 짓기, 이해관계 계산에 따른 이합집산 등등의 추한 모습과는 응당 거리가 멀 것이라 본다. 명분이 정당하고 아름다우면 대화로 풀지 못할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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