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와 일본 ‘백제왕 김치’
독도와 일본 ‘백제왕 김치’
  • 채복희
  • 승인 2008.07.19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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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소의 눈]

조선 제11대 왕 중종(재위 1506∼1544)과 영국왕 헨리8세(1509∼1547)는 무슨 연관성이 있을까.

비슷한 시기에 각각 자신의 나라에서 왕위에 올랐을 뿐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 젊은이들에게 중종과 헨리8세 중 누구를 더 잘 아느냐고 물었을 경우 답변이 궁금해진다.

우리 역사에 관심이 좀 있다면, 조광조 등 개혁세력과 함께 연산군의 폐정을 바로잡으려 했으나 실패한 왕 정도로 알고 있을 것이다.

중종과 헨리8세, 누가 더 유명할까

그런데 만약 “우리 젊은이들이 헨리8세를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몇 가지 근거가 있어서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개봉된 ‘천년의 스캔들’이나 꽤 오래전 개봉된 ‘천일의 앤’, 그 외 ‘헨리 8세’와 같은 영화가 소개되면서 헨리8세는 이 땅에서도 참 유명한 역사인물이 되었다.

물론 영국의 역사가 궁금하다는 진지한 접근에서라기보다는 그 왕이 왕후를 몇 사람씩 바꿔가면서 연애행각을 즐긴 것에 관심을 더 가졌던 때문으로 보인다. ‘천년의 스캔들’ 제목부터 풍기듯 영화들은 왕의 화끈한 여성편력을 기둥 줄거리로 하지만 사극의 특성상 설정된 당시의 상황과 배경은 영국 역사를 한번은 돌아보게 만든다.

영국인들이 자국의 역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것은 이야기의 본류가 아니기 때문에 여기서는 논외로 하고, 어쨌거나 21세기 한국인들이 헨리8세의 연애담을 통해 영국사를 가까이 보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에 비해 16세기 초 조선의 개혁이라는 대명제를 어깨에 걸고 왕위에 올랐으나 실패한 중종은 별다른 점이 부각되지 않는다. 중종 역시 사생활은 있었을 것이고 젊은 날의 열정도 완전히 그를 비껴가지는 않았으리라.

하지만 알 수 없는 노릇일 뿐 더 이상 역사를 추정하는 것은 무리이며 의미도 찾기 어렵다. 다만 개혁의 바람이 불고, 뒤이어 수구세력에 의한 전복과 실패, 피의 숙청 이런 내용들은 ‘스캔들’감으로 전락되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역사로, 대중성 획득에 앞서 사실에 입각한 역사 알고 배우기부터 선행될 성격을 갖는다.

이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는, 역사가 주는 교훈 때문에서다. 사실 개혁을 주도한 조광조는 후대 역사학계의 조명을 받았으며 많은 연구도 진행돼 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현대에 새롭게 생명을 얻어 재탄생될 가능성은 희박하기만 하다.

그렇지 않아도 수능에 짓눌린 청소년들 중 이미 절반은 한국사를 잃어버렸다. 반면 어떤 이미지로 입력돼 있든지 헨리8세는 알 가능성이 높다. 많이 접하면 친근감이 생기고 익숙해진다. 헨리왕은 인터넷 조회 수가 더 늘어나고 영국은 그래서 더 가까운 이웃나라가 된다.

부재한 국가 정책이 가장 큰 책임

독도를 일본 땅으로 명기한다는 사실을 접하고 국민 모두가 공분에 사로잡혀 있다. 중국이 한국사를 인정하지 않았던 당시 끓던 수준보다 높을 것이다. 당시도 우리가 우리 역사를 유배시키고 소홀히 해왔다는 자기반성의 목소리가 컸다. 하지만 딱 그때뿐 이후 우리 교육현장에 적극적으로 반영되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정부의 확고한 의지가 없으면 어떻게 역사교육이 제대로 진행될 수 있을 것인가. 재야 역사가들의 부르짖음과 역사의식 투철한 일선 교단 몇몇 교사들의 힘만으로 그것은 결코 수정될 수 없다.

최근 일본과 중국 일대를 다니면서 한국 김치의 우수성을 증명하는 책자 ‘서울 도쿄 베이징에서 찾은 우리 김치 이야기’가 발간됐다. 저자인 순천대 박종철 교수는 특히 일본에 부는 한국김치 열풍을 소개하면서 백제 때부터 일본인들이 동경하고 뒤따라온 한반도, 한민족의 그림자를 확인하고 있다. 그런 일본인들의 정서를 보며 일시적 만족감과 쾌감으로 치부할 노릇이 아니다.

교과서에 독도의 자국 영토 명기를 결정한 일본 정부를 견제하는 힘은 그 나라 역시 국민들로부터 나온다. ‘백제왕 김치’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한국김치에 열광하는 일본인들을 지한, 혹은 친한 세력으로 끌어 모으고 독도의 오랜 한국령 사실을 전 일본에 강력하게 입력시키는 것도 한 방법이었다.

아래로부터 조사되고 연구되는 분위기는 숱한 가능성을 암시하거나 제시하고 있는데도 정작 국가 차원의 노력과 정책은 부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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