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케트전기, 부부사원 동시해고 '말썽'
로케트전기, 부부사원 동시해고 '말썽'
  • 이국언 기자
  • 승인 2007.10.30 11: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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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직판결 3년 만에 또 다시 무더기 '해고'

▲ 10년 넘게 일한 회사에서 해고돼 2달여 거리를 헤매고 있는 해고자들이 천막농성장에 모여 대책을 숙의중이다.

“카페 이름을 ‘8’에서 ‘11’로 바꿔야 되겠네.”

지난 26일 오후 광주시 북구 본촌공단 코카콜라 사거리 한 귀퉁이에 있는 천막농성장. 비좁고 침침한 농성장 안에서 한 해고자가 넋두리하듯 말을 뱉었다.

숫자 ‘8’은 지난 2004년 해고된 8명의 여성 노동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부당해고 판정으로 원직복직 된지 3년 만에 회사는 다시 11명의 조합원을 정리해고란 명목으로 길거리로 내 몰았다. 10년 넘게 일하던 회사에서 쫓겨난 지는 56일째, 회사 인근에 천막농성장을 펼친 지는 이날로 47일째이다.

복직투쟁위원회(위원장 전성문)를 결성한 이들은 그동안 잊고 지냈던 인터넷 카페(http://cafe.daum.net/rocket8)를 최근 다시 살려냈다. 설마 다시 이런 일이 있으랴 했던 것인데, 한갓 순진한 생각들이었다. 이제는 해고자를 의미하는 숫자도 ‘11’로 바꿔 달아야 할 판이다.

두번째 입게 된 투쟁조끼

해고자 김미경(38)씨는 투쟁 조끼를 입는 것이 이번이 두 번째다. 2004년 한 차례 해고된 김씨는 당시 3개월간의 다툼 끝에 지방노동위원회로부터 ‘부당해고’ 판정을 받아 다시 현장으로 돌아간 바 있다. 그러나 회사는 3년여 만에 다시 그녀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해고 대상자라는 그 자체로도 개인으로서는 참기 힘든 모멸감을 느끼는, 한 회사에서 그것도 두 번씩이나 해고 통지서를 받아들었다는 사실에 김씨는 어이가 없을 뿐이다. 더욱 말문이 막히는 것은 이번에는 남편 전성문(41)씨까지 부부가 동시해 해고장을 받게 됐다는 것.

“부부 사원이라고 하지만 월급으로는 아이들 보육비, 학원비 대기도 힘들어요. 마이너스 통장 이용해 생활해 오다 상여금이나 나오면 갚고 하는 식이었지요.”

15년 근속에 연봉은 1800여만원. 10년 근속에도 1600여만원 정도다. 지난 2003년에 임금협상이 모두 끝난 상태인데 정부가 제시하는 최저임금에 못 미쳐 다시 임금을 인상하는 웃지 못 할 촌극이 빚어지기도 했다. 부부가 동시에 회사를 다닌다고 하지만 노동부에서도 저소득으로 간주, 둘째의 보육료를 지원해 주고 있던 상황이었다.

▲ 한 회사에 근무하다 한꺼번에 해고된 김미경·전성문 부부.

김씨는 당장 대출금 이자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 지 걱정이었다. 아이들과 이사 다니는 것도 징그러워 지난해 은행대출로 조그만 서민 아파트 한 채를 마련했는데, 당장 막막해 져버린 것이다.

“친정 엄마가 ‘아예 애기들까지 다 죽이지 그러느냐’고 회사에 따졌어요. 두 사람을 해고 시키면 네 식구 다 죽으라는 말 밖에 더 됩니까?”

동료들에 유인물 몇 장 나눠 준 것이...

오미령(37)씨는 회사에 제출한 사유서 한 장 때문에 정리해고 대상자에 포함됐다. 불법 유인물을 돌렸다는 이유다. 오씨 역시 2004년에 이어 두 번째 해고이다.

“업무시간도 끝났고, 회사 안도 아니고 회사 밖에서 조합원들에 유인물 몇 장 나눠준 것뿐이에요. 지역 노동계 소식이나 회사의 고용안정을 촉구하는 내용들이었죠.”

회사의 집요한 사유서 제출 요구를 끝까지 거부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유인물을 나눠 준 경위만을 설명하는 것뿐, 행여 잘못을 시인한다는 내용은 단 한 글자도 없었다. 회사도 당시 이에 대해 시비를 가린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사유서 한 장 때문에 오씨는 인사고과 평점에서 마이너스(-) 15점을 받아 결국 정리해고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초등학교 1학년과 올해 여섯 살 아들을 두고 있는 오씨는 실제 이 가정의 가장이나 마찬가지였다. 남편은 건축 일에 종사하고 있지만, 매일 일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회사는 한 가정의 부양책임자나 마찬가지인 여성 노동자를 두 차례나 거리로 내 몬 것이다.

경영상의 이유로 정리해고를 단행한 (주)로케트전기는 애초 정리해고자 선정의 이유로 고과점수가 낮거나 또는 재취업이 가능한 연령, 부양가족이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러나 대상자 선정의 그 기준이 모호할 뿐 아니라 악의적 요소가 있다는 것이 해고자들의 주장이다.

▲ 회사측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특별 근로감독을 요구하며 해고자들이 광주지방노동청을 항의 방문하고 있다.
한국노총 사업장인 로케트전기는 수 년 동안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에 진통을 겪어왔다. 그러나 노조는 제대로 대응 한 번 못해보고 그때마다 무기력하게 물러나고 말았다. 보다 못한 일부 조합원 몇 몇이 회사 안팎에서 나름의 활동을 해 오던 중, 공교롭게 이들 모두가 이번 정리해고 대상에 예외 없이 포함되고 만 것이다.

11명의 회원 중 6명은 회사 내 ‘민주노동자회’ 회원들. 나머지 5명도 평소 이들과 뜻을 같이 해 오던 사람들이었다. 특히 오는 12월 노조위원장 선거가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이번 정리해고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것이 해고자들의 주장이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지만 무리한 부당해고로 빈축을 산 2004년에도 3년마다 치러지는 그해 노조위원장 선거가 있던 해였었다.

전 근대적 취업규칙 악용 논란

동료들에게 유인물 한 장 돌린 것도 불법으로 간주하는 전 근대적 취업규칙도 논란이다. 사유서 제출을 이유로 최하 10점(1회)에서 최고 20점(3회)까지 감점을 부과토록 해, 이를 근거로 정리해고의 구실로 삼았기 때문이다. 노조원들은 “로케트전기에는 헌법에서도 보장하는 의사 표현의 자유마저 무시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양희(37)씨는 고심 끝에 이번 농성투쟁에 합류했다. 남편이 로케트전기에 근무하고 있는 처지여서 억울하면서도 입장을 정리하기가 쉽지 않았다. 서씨 역시 지난 2004년에 이어 두 번째 해고통지서를 받아 든 상태다. 그것도 육아휴직이 끝나고 회사에 복귀한 지 불과 4개월이었다.

“친정 엄마가 저만 보면 날마다 한 숨을 쉬죠. 해고통지서를 받은 날 남편을 통해 연근 25시간을 달아줄 테니 잘 정리하는 게 좋지 않으냐는 제의를 했나 봐요. 울리고 달래고, 오히려 그게 더 밉고 원망스럽더라고요.”

무릎에는 이런 처지의 엄마를 아는지 모르는 지 이제 22개월째인 지원이가 신기한 듯 과자 부스러기를 만지고 놀고 있었다. 맡길 데가 없다보니 별 수 없이 농성장으로 데려오는 것이다. 며칠 전에는 노동청 항의방문에까지 동행하기도 했다. 정리해고, 천막농성이 무엇인지 알 리 없는 지원이는 이렇게 엄마 곁에서 첫 세상 구경을 하고 있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째에요. 끝까지 투쟁해 꼭 복직할 겁니다”. 서씨의 격앙된 목소리였다.

김미경씨는 해고 뒤 아홉 살 대협이로부터 예전에 없는 아침 인사를 받아야 했다. 아이들은 학교로, 엄마는 출근길 시민들을 만나러 밖으로 나서는 길이었다.  

“용돈을 아꼈던지 몰래 지갑에 1만6000원을 넣어 놨더라구요. 그러면서 ‘엄마 힘 내세요’ 하는 거예요. 아이들에게 당당한 모습을 보이고 싶어요. 만약 여기서 우리가 지게 되면 나중에 우리와 같은 처지의 더 많은 사람들은 희망을 잃고 스스로 싸움을 포기하고 말거에요. 꼭 이겨야죠.”

김씨가 입술을 다시 굳게 다물었다.

▲ 서양희씨의 22개우러된 아들 지원이가 천막농성장을 방문한 기자에게 과자를 건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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