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방에 오면 '사랑' 한 과목이 더
공부방에 오면 '사랑' 한 과목이 더
  • 최유진 기자
  • 승인 2007.10.30 10: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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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속이야기]신원지역아동센터 공부방

▲ 딱딱한 교과서 수업을 벗어나 역할극으로 영어 수업중인 아이들.
교과 공부·특기적성 알찬 교육 내용으로 가득 가득
경제적 빈곤으로 소외받는 아이들 배움터

“선생~니~~이임! 안녕하세요!!(꾸벅)”

출입문을 활짝 열고 들어서는 필훈(11)이의 목소리가 경쾌하다. 학교가 끝나고 오후3시가 되면 다른 친구들은 사설 보습학원이나 게임방으로 향하지만 필훈이는 신원지역아동센터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곳에 오면 함께 장난칠 수 있는 동갑내기 친구도 있고, 동생처럼 아껴주는 동네 누나도 있고, 맘씨 좋고 예쁜 선생님도 있기 때문이다.

하루에 두서너 쪽의 수학문제를 푸는 것이 지루하고 힘들긴 하지만 이곳에 오면 필훈이와 동행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항상 즐거운 ‘놀이터’가 된다.

전국지역아동센터공부방협의회(이하 전지공협)에 등록된 북구 문흥동 소재 신원지역아동센터(센터장 윤성자)는 유치부 9명 초등부 47명 중등부 17명 고등부 2명 모두 합해 재적인원이 75명에 이르는 지역에서 가장 큰 규모(87평)의 지역아동센터다.

2년 전만해도 30평도 안 되는 인근 아파트상가 지하 방 두 칸에서 40명의 아이들이 북적북적 지냈지만, 최근에 정부로부터 시설 임대료 지원을 받아 조금 더 쾌적한 환경으로 이사를 왔다. 옥토반, 씨앗반, 새싹반, 열매반. 색연필로 곱게 적어 문패를 떡하니 붙인 각각의 공부방도 있고 식당도 따로 생겼다. 그 중에서도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곳은 지역의 어린이도서관 부럽지 않은 만큼 재미있는 책들이 그득한 ‘신원 작은 도서관’이다.

신원지역아동센터도 여느 센터와 비슷하게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등 주요 과목 과외활동을 하고 있다. 이뿐이 아니다. 영어회화 중국어 한자 통기타연주 미술특강 독서토론 예쁜글씨배우기(POP) 신문활용교육(NIE) 등 각종 특기 적성 프로그램을 개설해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게 센터의 자랑거리이기도 하다.

▲ 지난 추석, 한데 모여 명절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한껏 한가위 분위기를 냈다.
신원지역아동센터의 교육 프로그램이 이렇게 다양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IMF과 함께 불어 닥친 경제 불황으로 인해 살림살이가 힘들어진 가정의 아빠 엄마가 모두 일터로 나가거나, 혹은 빈곤으로 인해 골이 깊어진 부모들은 이혼을 선택해야 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이렇다 할 대책 없이 방치되는 아이들의 학업능력이 갈수록 낮아져버린 것.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 마음의 여유도 잃어버렸을까. 사실 따지고 보면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한 아이들이 경제적 빈곤으로 인해 학교와 사회로부터 ‘왕따’되는 이중, 삼중고를 겪고 있었다. 지역아동센터는 이런 아이들을 위해 교육·보호·안정·인격형성의 임무를 해내고 있다.

무엇보다 신원아동센터를 든든하게 지켜주는 버팀목은 사랑과 배려의 마음으로 아이들과 함께하는 9명의 선생님이 있기 때문이다.

2004년부터 센터에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쳐 온 장은영 교사는 “오히려 아이들의 성장을 보면서 배우는 점이 많다”고 말했다.

장 교사는 “아이들을 통해 ‘가능성’ ‘기회’ ‘희망’라는 단어를 직접 체감하게 됐다”며 “함께했던 시간들이 너무 소중하고 세월이 많이 지나서도 서로에게 웃음 지어줄 수 있는 사이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애틋한 마음을 전했다.

미술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박영란 교사는 “아이들에게 가장 큰 폭력은 마음속으로 미리 속단하는 ‘편견’임을 아이들과 생활하며 깊이 깨달았다”며 말문을 열었다.

박 교사는 “아이들과 처음 마주할 때는 ‘난폭하지 않을까?’ ‘이기적이지 않을까?’ 마음속으로 재단했지만 함께 지내고 보니 여느 또래 아이들과 똑같은 해맑은 아이였다”며 “일개 교사로서 모든 걸 해줄 순 없겠지만, 지금까지 상처받고 힘들었던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해주고 이곳에서 안정을 찾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아이들을 향하는 선생님들의 사랑이 보는 이들의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신원지역아동센터는 이밖에 부모를 대신해 영양소를 고려한 식사 및 간식 지원과 보건 위생에도 신경을 써서 아이들의 몸과 마음이 골고루 건강할 수 있도록 하는데도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 지역 사업체의 후원으로 테마파크에 가서 즐겁게 물놀이하다 '찰칵'


"일원화된 지원체계 절실"
[인터뷰] 전국지역아동센터 공부방협의회 광주지부장 범용석 목사


   
 
  ▲ 범용석 목사.  
 
우리 지역에만 약 100군데의 크고 작은 지역아동센터가 운영 중이다. 앞으로도 정부의 지원과 맞물려 아동센터의 증가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만큼 아동센터가 지역에서 큰 역할을 책임지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아동센터의 역할과 동시에 부여되는 아동센터의 책임과 의무를 간과할 수는 없다. 신원지역아동센터의 설립자이자 공부방협의회 광주지부장인 범용석 목사에게 이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다.

범용석 목사는 “예전엔 경제적으로 빈곤한 아동들이 지역아동센터를 다닌다는 인식이 많았지만, 최근 들어 사회적인 보호가 필요한 아동들을 위한 공간(더 포괄적)으로 그 의미가 바뀌고 있다”며 지역아동센터의 사회적 역할 변화를 설명했다. 하지만 지역아동센터의 증가 추세에 대해 반색을 표하던 범 목사의 목소리가 이내 무거워졌다.

범 목사는 “문제는 2004년부터 아동센터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확대되면서, 지역아동센터가 초기의 순수한 의도와 운영방식을 잃고 지원금에 매달리는 형태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며 현재 지역아동센터가 가지고 있는 내적 문제점을 지적했다.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이 형평성을 잃으면서 시설장 및 교사들이 이리 저리 치이고 있다는 의견.

일반적으로 아동 10명 이상 30명 미만의 시설은 월 평균 200만원을 지원받게 되는데, 이 돈으로 사회복지사 2명 월급을 주고나면 한 달에 80만원에 못 미치는 금액으로 아이들 교재비, 급식비, 전기료, 시설 임대료를 치뤄야 한다.

범 목사는 “어렵고 힘들었을 때는 적은 운영비로 서로 양보하고 배려했다. 월급 없이도 함께 해준 교사들이 많았지만, 이젠 월급을 챙겨 주지 않고서는 운영하기가 힘들다”며 난색을 표했다. 그 원인은 바로 맹점 투성이인 정부 지원정책 때문이라는 것. 순수한 의도에서 출발한 자원봉사자들도 조건을 비교하며 일을 그만두게 됐고, 그 결과 아이들만 고스란히 아픔을 받고 있다.

범 목사는 지원 방식의 개선과 더불어 “다양한 형태로 운영 중인 방과 후 교실, 청소년 아카데미, 수능 공부방, 지역아동센터라는 각각의 이름으로 된 복지 시설을 일원화된 행정 시스템으로 지원 관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역 시민사회를 향한 부탁도 잊지 않았다. “함께 물음을 던지고 해답을 찾아가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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