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그 사람들
그 때 그 사람들
  • 시민의소리
  • 승인 2007.10.29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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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가 밝아오니]정지창(영남대 독문과 교수)

영화관에는 좀처럼 가지 않는 나같이 게으른 사람도 「그 때 그 사람들」은 놓치지 않고 보았다. 무엇보다도 우리 세대가 직접 몸으로 겪은 역사적 사건을 다룬 영화였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란 사실의 충실한 재현이 아니라 허구(픽션)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화면 속에서 막연하게나마 어떤 역사적 진실을 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에 들떠, 무조건 좋아하는 아내와 시큰둥한 아들 녀석을 데리고 개봉되자마자 영화관을 찾은 것이었다.

2년 전에 본「그 때 그 사람들」은 아무리 허구라 해도 사실의 왜곡이 지나쳐 역사적 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든다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1980년에 태어난 우리 둘째 아들 같은 젊은이들이 이 영화를 보고 과연 10·26의 진상을 얼마나 알게 될까? 민주공화국 대통령의 암살사건을 ‘시해’(弑害)라는 봉건왕조 시절의 개념으로 배워온 세대에게, “내가 보기엔 그게 사실은 궁정동 비밀요정의 질펀한 술자리에서 벌어진 코메디 같은 우발적인 하극상(下剋上) 사건에 불과한 것 같아. 따지고보면 세상만사가 다 코메디 아냐?” 라고 영화는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엄중한 역사적 진실을 술자리의 가벼운 농담으로 깔아뭉개는 듯한 이 영화의 시선(요즘 유행하는 용어로 콘셉)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게 아니라면 박지만 씨의 상영금지가처분신청을 일부 받아들여 영화 초반의 부마사태 다큐 화면의 삭제를 명령한 법원의 어처구니없는 결정이 보여주듯, 아직도 위세등등한 박대통령 지지세력과 그들의 영향력에 영화제작자들이 지레 겁을 먹고 자기검열의 한 방편으로 영화를 블랙 코메디로 포장한 것은 아닐까?

영화가 끝난 후 나는 아내와 아들에게 내가 보고 들은 10?26과 그 때 그 사람들에 대한 얘기들을 들려주었다. 우선 영화 속에서 박대통령이 양주를 마시면서 일본 군가를 부르는 장면은 사실에 가깝지만, 웃기는 인물들로 묘사된 김재규(백윤식 분)나 그의 충직한 부하들인 주과장(한석규 분)과 민대령(김응수 분)은 실제와 너무 다르게 왜곡되었다고 지적했다. 우선 김재규라는 인물은 단순히 차지철 경호실장과의 알력 때문에 우발적으로 총을 뽑아든 것이 아니라, 사전에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안중근 의사가 이등박문을 암살한지 70주년이 되는 1979년 10월 26일을 거사일로 잡았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김재규는 박 대통령 밑에서 중앙정보부장이라는 요직을 맡고 있었지만 자기 나름의 소신이 있었고 결국 민주주의라는 대의를 위해 브루터스가 시저를 암살하듯, 박대통령을 암살한 것으로 주장했다고 전했다. 그리고 김재규의 부하들은 맹목적으로 명령에 따른 로버트 같은 군인이 아니라 사관학교를 나온 엘리트 장교들로서 김재규를 진심으로 존경했기 때문에 목숨을 내놓고 동참한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왜냐하면 당시 나는 군사재판의 취재기자로서 김재규를 비롯한 그 때 그 사람들의 진술과 얼굴 표정까지 직접 내 눈과 귀로 보고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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