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들어 총!
받들어 총!
  • 시민의소리
  • 승인 2007.10.08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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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대한민국]임경연(광주인권운동센터 상임활동가)

오랜만에 단비같은 소식이 들려온다. 지난 9월 18일 국방부는“종교적인 사유 등으로 집총(입영)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군대 대신 다른 방법으로 병역을 이행할 수 있도록 대체복무를 허용키로 했다"고 발표하였다.

참으로 오랜세월이다. 그동안 감히 그분들(?) 앞에선 말을 꺼내기도 어려웠다. 국가안보를 성역처럼 받들어 모시는 나라에서 감히 집총거부라니. 그분들 앞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을 옹호하는 발언을 할라치면, 십중팔구 ‘그럼 우리는 비양심적이란 말입니까?’라는 말이 되돌아오곤 했다. 그분들의 그런 반응도 이해 못할바 아니다.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속에서 군복무는 남성/국민의 ‘신성한’ 의무가 되어왔으니 말이다.

지난 70여년동안 한국정부는 매년 수백 명의 병역거부자들을 감옥으로 보내고 출소후에도 전과자 낙인을 찍어 사회, 경제적으로 엄청난 차별을 가해왔다. 지금까지 병역거부로 수감된 사람은 총 1만 3천명을 넘어섰으며 최근 5년간 수감된 사람만 해도 3700여명에 이른다. 전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가장 가혹하게, 가장 많은 병역거부자들을 감옥에 가둬온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나라의 부끄러운 모습이다.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는 국제사회에서 이미 인간이 누려야할 권리로 인정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약 70여 개국이 병역거부권을 헌법 및 각종 하위법을 통해 인정하고 있으며, 이들 소수자들의 인권보호를 위해 비전투 분야의 대체복무제도를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중국과 대치중인 대만도 2000년부터 대체복무를 허용하고 있다.

‘분단상황’이라는 현실적인 이유로 병역거부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는데, 과거 병역거부의 역사를 살펴보면 전쟁중에 목숨을 걸고 병역거부를 인정한 사례들이 많이 있다. 미국은 독립전쟁때부터 영국은 1차 세계대전시에, 프랑스도 전쟁의 과정을 거치면서 병역거부를 허용하기 시작했다. 늘 전쟁의 한복판에 있는 이스라엘의 경우도 오랫동안 비공식적으로 병역거부를 허용해왔다. 한국의 특수성만을 강조하여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권리를 부인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대체복무제도 도입이 수많은 ‘병역기피자’를 양산해서 나라를 지키는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되고 결과적으로 징병제의 근간을 흔들게 된다는 것은 지나친 걱정이다. 이미 대체복무제도를 실시했고 지금도 실시하고 있는 많은 나라들의 사례가 그것을 방증하고 있다. 오히려 대만의 경우 대체복무제도 실시 2년 여만에 현역병보다 1.5배 길었던 기존의 복무기간을 더 감축하였다.

정부의 대체복무제 도입발표는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여전히 아쉬운 지점은 남아있다. 정부 발표안에 따르면 대체복무자들의 복무기간을 현역병의 2배로 하였고, 군복무 중인 자 및 예비군 훈련중인 자의 대체복무는 인정하지 아니하였다. 게다가 현역병의 복무기간이 18개월로 단축된다 하더라도 최소한 36개월을 대체 복무해야 한다. 지나치게 긴 복무기간은 사실상 감옥행을 대신하는 형벌이라 할 수 있다. 대한민국도 동의표명을 한 유엔 인권이사회 결의 제77호는 이미 군복무를 하고 있는 사람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이 있으며, 대체복무는 형벌적 성격이 아니어야 한다고 천명하고 있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은 오랫동안 ‘병역기피자’나 ‘사회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않으려는 이기주의자’로 낙인찍혀 왔다. 병역거부자들이 받아온 비정상적인 폭력과 제도적 억압에 대한 성찰없이 인권을 논한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양심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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