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랑스런 대한민국 국민이다?
나는 자랑스런 대한민국 국민이다?
  • 시민의소리
  • 승인 2007.08.27 12: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야!대한민국]임경연(광주인권운동센터 상임활동가)

비가오나 눈이오나 운동장에 모여 ‘애국조회’를 하던 시절이 있었다. ‘애국심’이란 말을 인이 박히도록 듣고 자란 세대의 통과의례일까. 덕분에 발에 동상까지 걸려가며 두고두고 맹목적인 훈육의 후유증을 앓아야 했다.

지난 7월 27일 새로운 국기법 시행령이 발효되었다.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새로운 맹세문의 내용이다. 그저 규정에 불과하던 ‘맹세’가 이제 법령의 지위로 격상되었으니, 그 강제력이 더욱 커질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1968년 국기에 대한 맹세가 최초로 시행된 이래 많은 이들의 몸과 마음에 족쇄가 채워졌다. 현 국기법 시행령안에는 국기에 대한 경례와 맹세를 거부하였을 경우 처벌하거나 제재하는 조항이 삽입되어 있지는 않다. 그러나 형법, 국가공무원법 등 다른 법과 연계시켜 처벌하거나 학교 재량권에 따라 퇴학, 징계, 불합격 처분 등 제재조치가 가해진 사례들이 있어 과거의 억압적 상황은 언제고 되풀이 될 수 있다.

새 국기법과 황국신민서사

국가가 개인에게 ‘애국’을 강제하는 것은 일제시대 천황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던 ‘황국신민서사’를 떠올리게 한다. 개인의 애국심은 자신의 국가가 떳떳하고 자랑스러울 때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지, 그 국적을 갖고 있기 때문에 무조건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물며 그 국가가 민주주의를 거스르고 반인권적인 폭거를 일삼고 있는 현실에선 그 행위자체가 자신의 양심에 반하는 굴욕적인 행동이 될 수도 있다. 대한민국 헌법에 의하면, 교육적 양심이든, 종교적 신념이든, 이념적 이유든 구애받지 않고 국가의 잘못에 대해 자유롭게 비판하고 표현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현 국기법은 사상·양심·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 시민·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과 헌법을 두루 위반하고 있다.

갈수록 다인종 다문화 사회로 접어들고 있는 현실에서 배타적인 ‘민족’ 개념으로 국민을 규정하는 건 시대를 거스르는 발상에 다름 아니다. 현재 중국과 일본 정부가 배타적 민족주의에 힘입어 치열한 군비경쟁을 벌이고 있고 한국도 그에 뒤질세라 군비확장과 국가주의 강화에 힘을 쏟아붓고 있다. 아시아의 평화와 연대의 방법을 날이 새라 고민해도 부족할 판국에 똑같이 삽질을 해대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국기에 대한 경의나 애국은 국가가 법으로 강제하고 훈육할 일이 아니다. 정부는 ‘국민’이 중심이라는 입에 발린 소리 그만하고, 맹목적인 충성강요부터 당장 멈춰야 한다. 국기에 대한 맹세를 강제하는 국가가 어찌 '자유롭고 정의로운‘ 나라가 될 수 있겠는가? 먼저 개인의 인권과 생명을 지키는 떳떳한 나라가 되겠다는 서약을 하는게 우선 아닐까.

맹목적 애국 강요를 멈춰라

“히노마루와 기미가요를 강제하는 것은 사상·양심의 자유를 침해하고, 교육행정에 의한 교육의 부당한 지배에 해당하는 것으로 위헌·위법이다.” -도쿄법원(2006.9)- 우리가 그토록 우경화로 치닫는다고 비판하는 일본의 판결문이다. 이제 우리사회와 교육계도 진지하게 곱씹고 고민해야 할 때다. 지금까지 일본에서는 기미가요 제창과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하는 교사들이 수백명씩 중징계를 받으며 용기와 양심을 실천해왔다.

신자유주의와 FTA란 괴물을 우상처럼 떠받드는 나라, ‘비정규직 보호법’이란 신출귀몰한 법을 귀신같이 만들어내는 나라, 새만금의 죽어가는 뭇생명들 앞에서 생명기원 록 페스티벌을 벌이는 염치있는 나라, 아름다운 대테러국가에 현혹되어 제나라 국민들을 늘 주목받게 하는 나라, 사회적 약자들을 위하는 척 얍삽한 정책을 잘 만드는 나라, 일일이 열거하기가 숨찰 정도로 ‘자랑스러운’ 이 대한민국을 위해 우리 모두는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해야 할까?


최신 HOT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