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천성 인권결핍증
후천성 인권결핍증
  • 시민의소리
  • 승인 2007.07.16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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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대한민국]임경연 광주인권운동센터 상임활동가

오랫동안 그래왔다. 그저 손길만 스쳐도 옮기는 줄 알았던, 몹쓸짓을(?) 저지른 사람들 마냥 두꺼운 색안경을 끼고, HIV/AIDS는 그렇게 오랫동안 편견의 벽을 쌓아왔다. 확인되지 않은 공포와 불안감을 조성하면서.

얼마전 그 오래된 편견을 다시금 확인시켜주는 일이 벌어졌다. HIV/AIDS 감염인들의 치료와 복지를 담당해야 할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와 대한에이즈예방협회가 신문보도를 이유로 민간인이 운영하는 쉼터의 감염인들에게 탈퇴를 유도해 말썽을 빚고있다. 쉼터의 ‘노출위험성’ 때문이란다. 물론 사회적 인식이 부족한 사회에서 감염인들의 신분이 노출되었을 때 발생하게될 여러 문제들을 모르는 바 아니다. 노출된 순간 주홍글씨의 낙인이 새겨질테니. 그러나 언제까지 꼭꼭 숨겨두고 사회적으로 격리만 시킬 셈인가. 이런 식의 대응은 편견과 차별의 벽을 더 공고히 할 뿐이다. 정부는 감시하고 통제할 시간에 에이즈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아 줄 홍보를 대대적으로 벌일 일이다. 홍보매체는 널려 있으니 말이다.

인권 무시하는 감시와 통제

HIV/AIDS에 대한 두터운 편견은 정부와 언론의 책임이 크다. 1987년 에이즈 예방법이 제정된 이래 정부는 HIV/AIDS 감염인을 공포의 존재로 낙인찍고, 감염인들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보건정책만을 고수해왔다. 물론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감염인 인권보장을 입법취지로 한 에이즈 예방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였지만 그 법안은 겉으로는 감염인 인권보장을 내세우면서도 사실상 감염인의 인권을 저버리는 독소조항을 온존시킴으로써, 실패한 통제위주의 보건정책을 답습하고 있다. 현재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는 보건복지부와 현애자 민주노동당 의원이 제출한 두 개의 개정안이 각각 상정되어 있다. 현애자 의원이 제출한 개정안은 인권단체와 보건의료단체가 주축이 되어 활동한 ‘에이즈예방법공동행동’의 요구사항이 들어간 법안이다. 그간 공동행동은 '감염인 인권 증진이 최선의 예방'이라는 원칙 아래 기존 감시·통제 중심의 에이즈예방법의 전면적 개정을 요구해왔다.

정부와 쌍두마차격인 언론보도는 어떨까. HIV/AIDS 감염인이 발견된 지 20여년 동안, “문란하고 부도덕하면 에이즈에 걸린다”는 편견을 조장하고, “에이즈에 걸리면 죽는다”고 겁을 주고, 에이즈 바이러스를 퍼뜨린다고 낙인찍었다. 또한 “감염인을 철저하게 감시하고 격리하는 것만이 에이즈를 예방하는 길”이라는 식의 보도를 반복하며 차별과 편견의 앞잡이 노릇을 톡톡히 해왔다.

강요된 편견 거두자

현재 HIV/AIDS는 치료제가 꾸준히 개발되어서 당뇨병처럼 만성질환화한 병으로 이야기될 정도다. 성행위나 수혈등과 같이 바이러스와 직접 접촉하지 않는 이상 전염 가능성이 거의 없고 관리만 제대로 하면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다.

올해 3월 말 기준으로 질병관리본부가 집계한 HIV/AIDS 감염인은 3,891명이다. 하지만 사회적 편견 때문에 통계에 잡히지 않는 감염인의 수는 더 많을 것이다.

모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본 네덜란드와 태국의 HIV/AIDS 감염인들의 모습은 인상적이다. 그들은 이웃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당당하게 살아간다. 거기엔 두 정부의 속깊은 지원과 편견의 시선을 거둬낸 사회구성원들의 노력이 숨어있을게다.

한국 사회에서 HIV/AIDS 감염인들에 대한 차별은 상상을 초월한다. 당장 두 나라처럼 될 순 없겠지만, 이젠 오랫동안 강요된(?) 편견의 시선을 거둬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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