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6시간, 한 중증장애인의 삶
하루가 6시간, 한 중증장애인의 삶
  • 시민의소리
  • 승인 2007.07.09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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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대한민국]박찬동(장애인부모연대 사무국장)

1992년 6월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J씨(33·남·뇌병변 1급 장애)는 차량 운전자의 부주의로 사고를 당했다. 무의식 상태로 보낸 3개월과 1년 6개월 동안의 입원생활을 마치고 93년 가을 퇴원했지만 사고 당시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J씨는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동생을 책임져야 하는 소년가장이었다. 얼굴 부위를 제외하고는 혼자서는 움직일 수 없었고 심지어 생리현상마저 혼자 힘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했던 그는 퇴원 후에도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먹고 자고 신변 처리하는 모든 일상 생활을 타인의 도움에 의지해야 했던 그는 친구들과 친척 집을 전전하며 살아가야 하는 자신의 삶이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짐이 되는 것 같아 사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기만 했고, 5년 동안 무려 8번의 이사를 하면서 J씨는 남에게 부담만 주는 자신의 삶을 비관하며 무척 힘든 시절을 보냈다.

11년만의 버스 탑승


그런 J씨에게 삶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2002년, 인터넷을 통해 광주지역에서 활동하는 봉사동아리 ‘우리이웃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알게 되면서부터였다. 전동휠체어를 타고서는 울퉁불퉁한 인도를 이용할 수 없어 목숨을 걸고 도로를 가로지르며 3시간 만에 센터에 도착했지만 센터내의 ‘자조모임’에서 사고 후 11년 만에 처음으로 ‘환자’가 아닌 세상 속에서 생활하는 ‘장애인’을 만났다고 한다.

자조모임을 통해 만나는 장애인들의 모습은 비록 어설픈 몸짓과 이해하기 힘든 발음이었지만 자신의 생각을 주장했고, 사회 속에서 비장애인들과 평등하게 살 수 있기를 요구했다. 11년 동안 자신의 삶은 ‘생존’을 위해 타인의 도움을 구걸하는 삶에 불과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 것은 2004년 ‘장애인도 버스를 타자’행사에 참여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J씨는 장애를 갖게 된 지 13년 만에 처음으로 버스를 타게 되었다. 혼자의 힘으로가 아닌 6명의 도움으로 어렵게 버스에 올랐을 때, 그는 다짐했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혼자 힘으로, 내가 원하는 곳은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데 자신의 작은 힘을 더하겠노라고…

최근 J씨는 서구 화정동에 ‘서구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만들었다. 그리고 얼마 전 서구에 거주하는 중증장애인들과 함께 금호지구 한 우체국의 높은 턱을 낮추었다. 낮아진 턱에 장애인은 물론 지역주민들도 쉽고 편하게 이용하는 모습을 보며 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차별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위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은 것이다.

활동보조 6시간, 그 이후는?

올해 대학에 입학한 J씨는 5월 1일부터 시작된 ‘활동보조인서비스제도’에 의해 한 달 평균 180시간(하루에 6시간)의 활동보조인의 도움을 받고 있다. 활동보조인이 오는 오전 11시까지 J씨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무작정 기다린다. 11시에 씻고, 아침 겸 점심식사를 하고, 설거지를 마친 후 J씨가 일하는‘서구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 도착하면 오후 2시가 넘어버린다. 활동보조시간이 끝나는 5시까지 학교에 갈 준비를 하자면 점심 먹은 지 5시간 만에 또 저녁을 먹어야 하고, 다음 식사는 무려 19시간 후에야 가능하다. 그나마 J씨는 우여곡절 끝에 하루 6시간을 이용할 수 있는 은혜(?)를 입은 것이고, 대부분의 중증장애인은 하루 평균 2~3시간만을 이용가능하다. 그것마저 2007년 올해만 해당된다 하니 내년엔 어떻게 될 지 막막할 뿐이다.

J씨가 살아온 삶과 하루 6시간을 24시간처럼 살아가야하는 현재의 모습을 통해 우리와 함께 사회 속에서 살아가야 할 중증장애인들의 처지와 고통을 헤아리려는 정부당국의 의지와 시민들의 따뜻한 관심이 더욱 더 필요하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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