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발전, ‘대운하’ 속에 침몰할 것인가?
균형발전, ‘대운하’ 속에 침몰할 것인가?
  • 시민의소리
  • 승인 2007.06.04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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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칼럼]이재의 나노생물방제실용화센터 소장

바야흐로 대선 레이스가 시작되면서 ‘한반도 대운하’가 뜨거운 관심을 끌고 있다. 5월29일 한나라당 대선후보들의 당내경선을 위한 첫 광주 토론회에서 이명박 후보가 한반도 전역에 대운하를 건설한다는 계획을 공론화했다. ‘대운하’는 ‘청계천’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서울시장 재임시절 추진했던 ‘청계천 살리기’는 이명박 후보의 대표브랜드가 됐다.  이 후보는 현재 대선 후보들 가운데 가장 국민적 지지율이 높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운하프로젝트’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다고들 느끼는 것 같다.

이 후보는 운하건설의 대의명분이 ‘물류’나 ‘환경’이 아니라 ‘관광소득’이라고 답했다. 여기에 대해 터무니없는 프로젝트라며 여기저기서 반론이 만만치 않다. 운하는 아무래도 한물간 19세기형 물류운송수단이라는 게 중론이다. 자동차, 기차, 비행기 등 더 빠른 운송수단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환경론자들은 집중호우로 인한 범람, 안개, 식수원 오염 등 운하건설이 가져올 생태계파괴를 지적하면서 반대 목소리가 높다. 이런 반대를 의식해서 부러 ‘관광소득’을 명분으로 꼽았던 것으로 보이지만 이것 역시 역풍이 거세다.

그러나 경제전문가들은 운하건설이 노리는 진정한 목표는 건설경기 활성화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만약 운하건설이 현실화된다면 토목 건설업자들에게 큰 사업기회를 가져다 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1930년대 중반 루스벨트 대통령은 불황의 늪에 빠진 미국 경제를 회생시키기 위해 테네시강 유역에다 대형 댐을 막는 큰 공사를 벌였다. 국가로부터 이 사업을 수주한 건설업자들은 큰돈을 벌었다. 공사에 참여한 노동자들에게는 국가가 돈을 찍어서 인건비로 나눠줬고, 그들이 이 돈을 쓰기 시작하면서 꽉 막혀 질식 상태에 빠졌던 경제가 다시 회생됐다는 것이다. 경제학자 케인즈가 주창해 성공을 거둔 ‘뉴딜정책’은 20세기 중반 이후 국가주도 경제성장 정책의 확고한 논리적 기초를 제공했다. 우리나라도 경제개발계획 초기시절 경부고속도로, 경인운하 건설 등에 국가가 투자를 주도하면서 경제 규모를 키웠다. 

하지만 20세기 말에 이르자 이런 경제정책의 부정적 측면이 더 크게 나타났다. 국가권력이 비대해지면서 특정 경제인에게만 특혜가 주어지는 정경유착 상황이 오래 지속됐고, 그 결과 재벌경제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재벌경제는 경쟁보다 특혜에 의존하면서 자원 배분의 심각한 왜곡을 가져왔다. 1997년 IMF금융위기는 그 결과였다. 지난 반세기 동안 위세를 떨쳤던 국가주도 경제성장 정책의 한계가 분명하게 드러났다. 정보화와 세계화시대가 도래하면서 경제 환경이 크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은 이런 반성에서 시작됐다. ‘성장 이데올로기’에 묻혀 합리화됐던 재벌 중심의 ‘특권경제’에서 ‘대중경제’, ‘균형발전’으로 성장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었다. 피폐해져가던 농촌과 지방에 정부의 체계적인 지원이 시작됐다. 광주의 광산업, 전남의 생물산업, 대구의 섬유산업, 부산의 신발산업 등 지역산업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예산이 본격적으로 투입되고, 공공기관 지방이전과 혁신도시 건설, 행정수도 이전 등이 추진됐다. 서남해안개발과 광주문화중심도시조성 사업도 그런 맥락에 서 있다. 소외계층에 대한 사회안전망 구축에도 관심을 쏟고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제 막 걸음마를 뗀 개혁정책들이 정치적 보수화 물결과 더불어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균형발전’은 꽃도 피워보지 못한 채 과거 성장이데올로기의 또 다른 표현인 ‘대운하’ 프로젝트에 떠밀려 침몰할지 모르는 상황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운하건설에 필요한 막대한 재원은 결국 균형발전 특별예산 등 개혁정책에 투입됐던 예산을 줄임으로써만 가능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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