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같은 날의 오후
엿같은 날의 오후
  • 시민의소리
  • 승인 2007.06.04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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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유등등]강정남 여성농민

엿같은 날의 오후라고 한다고 오해하시 마시라!.. 요즘 한낱 뙤약볕에 녹아 흐르는 땀방울은 정말 엿같이 끈적인다. 삼각 사다리에 의지한 내 두다리는 벌써부터 휘청인다. 몇 년전부터 관절에 문제가 생겨, 하루종일 배봉지 싸기를 하고 나면 앞으로 걸음을 걸을수 없어 옆으로 걸을때도 있다. 이놈의 농사일은 고되고 지치기만 한게 아니라 조금만 눈길을 옆으로 돌려 다른 사람들 세상살이들과 비교하면 그순간부터 빈정이 상하기 시작한다. 특히 이렇게 더운날은 더더욱....

가난의 대물림이 서럽다

낮에 잠깐 집에 설탕이 떨어져 땀을 삘삘 흘리며 자전거타고 농협 분소를 갔다. 문을 꽁꽁 쳐 닫아 논게 아마 에어콘을 틀었나 보다. 역시나 안은 아이스크림 같이 시원하였다. 설탕을 사서 막 나오려고 하는데 이제 막 스무살이나 남짓 되었을까!.. 앳되보이는 큰애기기가 들어와서는 큰소리로 “여기 면세유 있어요? 차에 기름넣어야 되는데...” 하는 것이였다. 뉘집 자식인지, 요즘 애들은 훌쩍 훌쩍 크는 통에 몇 년만 다른곳에 학교갔다 오면 누군지 분간이 안간다. 나는 저 큰애기가 농업용도로 면세유를 필요로 할것 같진 않음이 분명하기에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어디 농협에서 어떻게 나오나 보자” 하고... 곧 이어 창구의 여직원이 화들짝 놀라면서 “지금 감사기간이예요...” 하는 것이였다. 그럼, 감사기간이 아니면 된다는거야 뭐야? 정말 속이 꼬이기 시작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큰애기는 지역에서 이름만 대면 누군지 아는집 자식이였다. 비교되네... 우리집은 농사규모도 적어 경운기 1년 넣을 기름도 모자라게 주면서... 젠장! 누구는 녹슨 자전거 폐달 밟고 뭐빠지게 왔다 갔다, 누구는 눈부시게 하얀 중형차를 타고 멋기게도 빠져 나간다. 기분이 참 묘했다. “난 왜 요모양 요꼴로 밖에 못살지? 내가 일을 적게 하는것도 아니고 낭비가 심한것도 아닌데 참... 허탈했다. 두손을 꽉 움켜쥐고 억척을 떨고 살아도 결국 요렇게 밖에 못살거면서, 결혼한지 십육년이 자났으면 나도 좀 달라져 있어야 할것 아닌가! 남들은 우리가 빚이 없다고 부자라고 하지만(웃기는 일이다. 솔직히 빚은 있다. 남들처럼 ”억“단위는 아니지만)가난하게 산다는건 짜증나고 불편하고 초라하기 까지 하다. 그러나 더욱 나를 못견디게 만드는건 내 가난이 나에게만 머물지 않고 대물림을 한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여자팔자 뒤웅박 팔자라는 말도 전혀 근거가 없는 말은 아니다, 단, 주체의 의지를 중심에 놓지 않고 바라보는 세상관이기에 건강한 생각은 아니지만 나름 근거가 있는 것이다.내가 누구의 자식으로 태어냐에 따라 내운명의 80%는 결정 난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내가 이렇게 사는것도 지극히 당연한 일인 게다. 그러나 뒤집어 까놓고 얘기하면 ”가난한 사람들은 애도 낳지 말아야 한다는 얘긴가?”

상품이 아닌 인간으로 살게 되기를..

요즘은 절대적 가난이 문제가 아니라 상대적 가난과 박탈감이 문제가 되는 세상이다. 이것이 고착화 되고 심화되는게 문제라는 것이다. 수학 공식처럼 굳어지는 삶의 방식에서 나는 심한 역겨움을 느낀다. 힘있는 권력과 부만 살아남아야 한다면 그게 제대로된 세상인가! 크게 본다면 FTA 또한 마찬가지다. 힘과 권력,부를 가진 사람들을 위해 우리는 여전히 뼈빠지게 일해도 달라질것 없는 절망의 세상으로 가자고 꼬드기고,협박하는게 FTA라고 본다. FTA는 단순히 협정이 아니다. 우리 삶의 방식, 국가운영의 내용과 방식이 달라지는 것이다. 이제는 국가가 해야할 최소한의 국민에 대한 예의, 약자에 대한 보호, 공공성이 필요없는 세상으로 나아갈 것이다. 오로지 이윤만을 쫓으면 되는 것이다. 국가는 이윤을 위해 사회공공성을 팔아넘길것이고 우리는 비싼 댓가를 감당해야 한다. 이런데도 구역질이 안나올수 있는가! 현기증 까지 난다. 더 늦기 전에, 우리는 다른 삶의 방식을 찾고 요구하고 확산시켜야 한다. 인간이 상품이 아닌 인간으로 사는 가치에 무게를 싣는 세상, 빨리뛰는 사람도 있고 걸을수 없는 사람에게도 똑같이 햇볕을 누릴수 있는 다양하고 공평한 세상... 서로가 서로를 위해 살 때 진정한 자기가 있는 세상... 아! 엿같이 늘어지는 오후에 달고 상쾌한 단잠을 잔것처럼 다시 희망을 위해 나는 장갑을 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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