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낡은 잔재를 털고
5.18 27주년 기념행사를 둘러보고
내 안의 낡은 잔재를 털고
5.18 27주년 기념행사를 둘러보고
  • 시민의소리
  • 승인 2007.06.04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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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승훈 5.18구속부상자회 회원

마지막 피붙이 손자를 절대 잃지 않으려는 듯 꼭 껴안고, 자식의 관에 머리를 받고 오열하신 할머니는 지금 어디에 계실까? 그때 관 속의 아버지께 마지막 인사를 올린 그 어린아이는 이젠 어떻게 되었을까?

과거를 묻지 말라고 누가 말했나. 학살자와 그 후예들은 유유자적 인생을 즐기고 있는 데 이 시대를 강물처럼 살아온 풀 같은 사람들의 가슴에 뜛린 멍과 한과 탄식은 누가 채워줄 것인가.

요즘 매일 보도되는 정치인들의 5·18묘지 참배소식을 접하는 것도 일종의 공포다. 아집과 독선과 편견을 조장하면서 자신들의 정치공학적 이해관계에 따라 5·18정신을 바꾸고 이용하는 것이 이제는 넌덜머리가 난다. 아니 저주스럽다.

그때 그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학살자가 누구인지, 진상 규명에는 아직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사람들이지 않는가. 학살자를 오월영령 앞에 세우지 않고서 아직 누구도 싸움은 끝이라고 말할 수 없다. 영화 ‘밀양’의 한 대목에서처럼 나는 용서하지도 않았는데 누가 누구로부터 용서를 받았단 말인가.

5·18 27주년을 맞아 더욱 풍성해진 부대행사와 학술대회, 그리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초청 등 올해는 특히 더 많은 화제를 뿌렸다. 여러 행사들을 둘러보면서 나는 견해의 차이를 서로 인정하는 속에서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첫째, 5·18광주민중항쟁의 주체논쟁이다. 모든 광주시민이 주체이지만 그 중심은 5월 27일 도청을 지킨 시민군이다. 그러나 주체를 둘러싼 논쟁과 관련해 너무 많은 견해 차이와 오해가 난무한 실정이다. 5·18의 순수했던 정열이 기득권을 쥐려는 일부 몇 사람에 의해 이용당한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5·18의 권력화·박제화논란도 아마 이런 흐름과 무관치 않은 것 같다. 이에 대해서는 더욱 다양한 공론의 장에서 합리적 절차에 따라 논의되길 바란다. 

둘째, 학술대회를 통해 발표됐지만 이제는 5·18이 돌발적인 항쟁이 아닌 조직적 저항이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5·18항쟁은 10일 간의 항쟁으로 일반화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15일 간의 항쟁이었다고 본다. 1980년 5월13일 저녁, 전남대총학생회 기획실은 5월 14,15,16일의 도청집회와 19일의 북동성당 카농 전국농민대회를 상정해, 만약 계엄이 강화되면서 무자비한 탄압이 있을 때에는 저항의 한 방법으로 최대한의 극한 투쟁도 예견하고 있었다. 박관현 총학생회장이 주도한 도청집회는 광주시민에게 민주화에 대한 기대가치를 상승시켜줌으로써 5·18항쟁의 기폭제가 됐다는 점도 다시 평가돼야 한다.

셋째, 5·18항쟁 관련자와 5·18기념재단의 철저한 자기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역사의 발전은 냉엄한 자기반성과 개혁 없이는 있을 수 없다. 문제가 있다면 공론화하여 환골탈태의 자세로 거듭나야 한다. 사회정의를 앞당기고 대동세상을 꿈꾸었던 5월은 이제 통일로 가는 디딤돌이 돼야한다. 내 안에 묵었던 낡은 사고와 닫힌 자세를 극복하는 것만이 내일을 여는 희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녹음이 깊어가는 6월, 벌써부터 초여름의 무더위가 장난이 아니다.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어떻게 돼 가는 줄도 모르고 핏대를 세워 싸우고 헐뜯으며 짝짓기를 하는 정치의 계절이지만 27년 전이 그랬듯 다시 5월은 더위를 시켜주는 한 줄기 미풍이면 더 바랄 것이 무에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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