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국회의원 원희룡님에게...
[편지] 국회의원 원희룡님에게...
  • 시민의소리
  • 승인 2007.06.03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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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나고야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재판을 보며

▲ 지난 31일 오전 9시 30분경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원고단과 지원단 회원들이 소송 승리를 기원하는 시민들의 격려 속에 나고야 고등법원 재판정으로 출정하고 있다.
나 허종웅 선생이네!.
오래간만이네. 큰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불철주야로 노력하시느라 수고가 많겠군요.

나는 지금 일본 나고야를 거쳐 동경에 있네. 원 의원, 다른 게 아니라 혹시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라고 들어 보았는가. 나는 몇 년 전부터 이 소송을 지원하기 위해 제주에서 모임(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제주특별자치도 제주도회)을 조직해 그 책임을 맡아 일하고 있네.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지난달 31일에는 암울한 일제 식민지 현실을 되돌아보게 하는 아주 중요한 재판이 이곳 일본 나고야에서 있었다네. 바로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이었는데, 지난 2005년 2월 1심 판결에서 기각당하고 말았는데, 이번 항소심 판결에서도 또 다시 기각을 당했다네.

원 의원, 치욕스러운 일제시대의 얘기네. 패색이 짙어지자 일본은 무지막지하게 조선 사람들을 전쟁터로 내 몰고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강제로 일본으로 끌려왔네. 어린 소녀들이라도 예외가 아니었지.

▲ 나고야 미쓰비시 중공업에 강제로 끌려간 어린 조선 소녀들. ‘내 生前에 이 恨을’ (태평양전쟁희생자광주유족회 자료집)
1944년 봄 당시 12~14세에 불과한 어린 소녀들이 이곳 일본 나고야로 끌려왔네. 일본에 가면 돈도 벌고 공부도 시켜준다고 속여 당시 군용 항공기를 만들던 미쓰비시 중공업에 데려다 강제 노동을 시킨 것이지.

이미 80을 바라보는 할머니들의 한 많은 얘기를 어디 필설로 다 말하겠는가. 배가 고파 남이 먹다 버린 음식을 뒤적여 허기를 채우고 그것도 안 되면 물로 배를 채웠다고 하네. 협박과 구타는 말할 것도 없고 1944년 12월 있은 대지진으로 현장에서 6명의 어린 소녀들이 희생되기도 했네.

부모한테 편지를 쓴다고 썼지만 답장이 없었고, 알고 보니 집에서도 편지를 받아 본 사람들이 없었다는 거네. 속인 거지. 월급도 나중에 조선으로 돌아가면 보내준다고 해 임금 한푼 받지 못했지.

다행히 목숨은 건졌으나 해방이 됐다고 해서 그 분들의 고통이 끝난 것이 아니었네. 실은 강제노동에 동원됐던 것인데 당시만 해도 유교적 관념이 심할 때라 단지 일본에 갔다 왔다는 것으로 군 위안부 취급을 한 것이지.

혼담이 오가다가도 번번이 깨지고, 결혼해 아들 딸 낳고 가정을 꾸리다가도 어디서 소문을 듣고 온 남편이 속아서 결혼했다며 그때부터 구타와 외도를 하거나 심지어 파혼을 당하기도 했지. 대부분 정상적인 가정마저 꾸리지 못하고 지금껏 살고 있고, 지금도 자신의 이름이 밝혀지길 두려워하고 있다네.

▲ 1944년 12월 일어나 대지진으로 당시 현장에서 숨진 광주 수창초등학교 출신 김순례씨의 영정 사진을 들고 있는 하정웅 제주도 지원회장.
소송의 원고들이 총 7명인데 광주전남 출신이 대부분이네. 나고야 고등법원은 이번 재판에서 할머니들에 대한 강제동원과 강제노동이 국가의 관리 하에 벌어졌다는 것을 처음으로 인정하였네. 재판부는 그러면서도 65년 한일협정을 근거로 기각 판결을 내렸지. 한일협정 체결로 이미 보상 문제는 끝났다는 것이지.

나는 이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3차례 걸쳐 나고야에 가서 항의집회에 참가하고 재판에도 참석했는데 이번 일본행에는 최봉태 변호사, 광주의 태평양 전쟁 유족회 이금주 회장님과 이번 소송의 원고이기도 한 피해자 양금덕(78)씨 등 7명이 이 재판에 참가했다네.

오늘(1일)은 동경에 있는 미쓰비시 중공업 본사에 찾아가 항의 집회를 갖고 본사 임원을 만나 어린 조선 소녀들을 착취한 것에 대해 사과하고 보상을 하라고 촉구하고 왔다네.

99년 첫 소송을 제기했는데 8년을 이어 온 지리한 소송 과정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한을 풀지 못하고 돌아가셨네. 원고 중 4명만이 참석했는데 3명은 지병으로 입원 중이거나 거동을 하지 못하는 형편이지. 비록 살아있는 사람이라도 가난과 병마에 시달리고 있고 알다시피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처지네.

일본에 와서 다시 느끼는 것이 참으로 우리가 부끄럽고 면목 없다는 것이네. 일본 정부와 달리 이곳의 양심적인 시민들은 이 소송 위해 공동변호단을 결성하고, 이 소송을 위한 지원단체를 꾸려 남모르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네. 자기들은 밥 한끼 제대로 못 먹고 차 한번 안 타면서도 이 할머니들의 재판 진행을 위해 숙식비는 물론 항공료까지 손수 마련해 돕고 있는 것이지.

부끄럽네. 꿈 많은 어린 소녀들의 청춘과 삶을 송두리째 앗아간 이들의 한은 어디에 풀어야 하는가. 정작 이 일에 누가 나서야 하는가. 한일협정으로 이들의 피 값을 대신 챙겨오면서도 이들을 외면해 왔던 정부나, 이 일에 무관심한 국내 분위기를 생각하니 정말 일본의 이들 시민들 앞에 낯을 들 수가 없네. 

그래서 내가 감히 부탁하지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이 일에 원 의원이라도 나섰으면 하는데 원 의원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대선 때문에 바쁘신데 이렇게 부탁하는 것이 좀 미안하긴 하지만 아는 자네한테나마 좀 부탁하네. 우리 같은 사람들이 나서긴 하지만 뭔 힘이 있는가. 정부나 국회가 먼저 나서야 할 일 아닌가.

그럼 이만 줄이며, 꼭 대통령에 당선되길 빌겠네.
2007년 6월 1일 저녁 동경에서 허종웅이가 보냅니다.

▲ 한일협정을 이유로 항소심마저 각하 결정이 내려지자 원고 양금덕 할머니가 격분한 나머지 나고야 고등법원 법정에 주저앉아 일본정부를 강력히 규탄하고 있다. 지병을 앓고 있는 원고 김성주 할머니는 고개를 떨군채 말이 없다.


<편집자주>
허종웅(64)씨는 지난해 제주 중앙여중 교장을 끝으로 정년 퇴임했으며, 현재는 나고야 미쯔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제주도회 회장을 맡고 있다.

지난해 가을 무렵에는 김태환 제주도지사 등 제주도민 2만 2,000여명의 서명을 모아 일본 정부와 나고야 고등법원에 공정재판과 사죄를 촉구하는 항의 엽서를 보내기도 했다.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은 허 회장이 제주제일고 근무시절 고교 제자(25회 졸업)와 스승의 관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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